독서리뷰

[독서리뷰 67] 코이케 류노스케의 ‘침묵입문’을 읽고...

pumpkinn 2012. 2. 8. 10:07

 

 

 

 

'침묵입문'...

 

이 제목이 내 시선을 잡은 것은 바로 올해를 침묵과 비움의 해로 정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교보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책.. 생각 버리기 연습, 버리고 사는 연습, 침묵 입문 등등은 제목만으로도 내 시선을 잡아 끌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내 안에서 시끄럽게 아우성대는 생각들을 비워냄으로써 내 영혼을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싶었던 마음이 그렇게도 간절했던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올해는 침묵을 지혜롭게 지키면서 내 자신을 호들갑 속에 끼워넣지 않고, 또한 시끄러움 속에서 방황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좀 더 차분함 속에 놓아두고, 내 자신이 나다울수 있도록 도와주며, 객관적으로 저만큼 한발치 떨어져 나를 느껴보겠다는 다짐을 굳건히 했던 바. 그런 나의 계획을 한 발자국 내딛기 위해 집어든 책이 바로 ‘침묵입문’이었다.

 

책을 읽으며...

 

먼저 이 책을 쓰신 분이 동경 대학 출신의 나이 어린 꽃미남 스님이라는 것이 사뭇 나의 관심을 끌었다. 책 표지에 첨부되어 있는 사진이 얼마나 앳되고 이쁘게 생긴 분이신지. 이분이 쓰신건가? 대체 어떤 내용들이 들어있을까 무척이나 궁금해하면서도 ‘침묵’이라는 주제가 안겨주는 느낌이 다소 무겁고 진중하기에 어떤 심리적이거나 철학적인 내용이 담겨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 속에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나의 이런 막연한 상상과는 달리 책은 첫 페이지부터 나를 아주 깔깔거리게 만들었다. 너무나도 재밌고 발랄해서. ‘침묵’이란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웃으며 읽은 책은 또 없는 듯. 시작부터 흥미 진진했다. 신세대 스님의 톡톡 튀는 표현들은 그야말로 통통 튀어 내 가슴속으로 쏙쏙 들어왔다. 이 귀엽고 잘생긴 꽃미남 스님 손끝에서 펼쳐지는 시니컬하면서도 예리한 지적이 내 온갖 감각을 열려있게 하고 귀를 쫑긋 세우게 한 것이다. 읽으면서 류노스케 스님의 콕콕 찌르는 말씀에 나 역시 콕콕 찔려하면서도 내 입가에는 미소가 한가득 머물렀다.

재밌었던 것은 류노스케 스님이 자주 쓰는 표현과 내가 쓰는 표현과 닮아서였다. 나는 싫어하는 것을 표현할 때 ‘역겹다, 추하다’ 같은 표현을 자주 쓰는데, 스님 역시 그런 표현으로 싫은 것을 표현한다는 것에 뭐랄까 무언가 동지의식이 느껴졌으니, 여기서 또 나의 갖다붙이기 작전이 발동이 걸렸던게다.

“사람들은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다. 자신이 하는 얘기도 당연히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하찮은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P15)

푸하하~ 완전 죽음이었다. 얼마나 유쾌하게 웃었는지. 정말이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특별한 존재이며, 또한 얼마나 자신이 하는 말들이 중요한 의견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있는지. 하지만 그런 행복한 착각에도 불구하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내가 하찮은 이야기를 하고'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글프기마저 하다. 쓸데없는 쓰레기같은 이야기를 쏟아내기보다는 차라리 침묵을 지킴으로서 적어도 언어공해, 소음공해를 넘어서 품위 유지까지도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깔대기 없이 마구마구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를 포함한 많은 우리들이...

‘침묵’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웃으면서 읽은 책은 정말 또 없을 것이다. 이 책이 내게 실전서가 되어준 것은 ‘침묵’에 관한 철학적이거나 이론적인 접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침욱을 할 수 있는지 침묵하는 ‘실질적인 방법’이 그려져 있어서 나에겐 현실적인 도움이 되었던게다. 그야말로 침묵입문이었다.

말을 천천히 하고 느리게 하는 것이 욕망을 억제해주고 품위를 지키게 해준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었으며, 침묵을 하거나 비판을 하지 않음으로, 또는 말을 느리게 함으로서 자기 농도를 희석하여 자기 중심적인 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은 절로 “아~”하는 감탄사가 터져나오게 했다.

그런데 아직 생각이 짧은 나로서는 살짝 햇갈리는 부분도 생긴다. 자기 농도가 짙어지니 좋은 것을 말해서도 안되고, 자기 농도가 짙어지니 나쁜 것을 말해서도 안되고, 칭찬도 하지말고 불평도 하지말고 그럼 당최 뭐를 말하라는 것인지.. ^^;;

모든 것을 ‘감정’이란 색깔을 빼고 무채색인 상태에서 즉, 물의 상태에서 바라보라는 의미인 듯한데, 어쨌거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못할 것도 없는 그런 희망적이고 유쾌한 메세지들. 역시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은 ‘침묵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분노, 탐욕,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말들이 난무할 때, 그 속에서 조용히 침묵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용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적당히 맞춰주며 안절부절하며 아첨하는 꼴불견이 되지 않도록 도와준다. 또 상대를 부정하는 ‘분노’에 휩쓸리지 않게 해주고, 상대를 두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탐욕’에도 휘둘리지 않게 해준다. “그런가요?”하고는 용감하게 침묵을 지키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담담하고 씩씩한 모습이다. (P34)

그리고.. 무엇이든 ‘정직하게’ 말해야 할 의무는 없다 (P39) 라는 말은 내게 또 하나의 가르침을 안겨주었다. 물론 이것은 ‘거짓말’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표현해서 상대방이 기뻐할 이야기가 아니면 차라리 그냥 내 안에 담아두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인게다. 그것은 자기 농도를 희석하는데도 도움이 되며 쓸데없는 말을 함으로써 또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와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되니 말이다.

그리고 칭찬을 호들갑스럽게 듣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흘려보내는 습관을 들이게 되면 ‘자기병’에 대한 예방접종이 되어 과잉 상태인 자기 농도를 낮춰준다는 것은 내게 또한 아주 흥미로운 배움이었다.

 

리뷰를 마치며...

 

침묵입문은 어려운 불법 이론을 우리 현대 언어로 톡톡 튀면서도 윗트와 시니컬함이 함께 어우러진 유쾌한 해석들로 쉽게 이해가 되었고, 또한 우리 일상에서 접하는 실질적인 예를 함께 들어줌으로써 너무나도 재밌게 읽혔다.

코이케 스님의 수 많은 가르침들 중에 내가 가장 삶 속에 익히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물론 ‘모두’지만 ^^;;) 느리게 천천히 이야기 하기, ‘그런가요?”하며 침묵으로 대하기, 그리고 사과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이 세가지다.  우선 이 세가지를 지키게 되면 나는 좀 더 나답게 내 모습을 지킬 수 있게 될 것이며, 또한 품위있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지 않게 단순히 제목만을 보고 집어든 책으로 인해 아주 유쾌한 시간이 되었다. 그와 함께 떨어진 팥고물도 주워먹고. 일거양득의 시간.

침묵을 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 내 안의 시끄러운 생각들은 비워지고, 그 빈 공간이 충만감으로 가득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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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어보는..

김영동의 산행’...

법정 스님께서 암자로 산행하시는 뒷 모습을 보고 지으신 곡이라고...

남편이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이 맑디 맑은 연주 속에 뭔지 모를 외로움과 슬픔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니겠지..?

외로움도 기쁨도 슬픔도 행복도 모두 초월하신 법정 스님이실텐데...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도 법정스님처럼...

그렇게 우리의 혼란스러운 삶에 아름다운 등불이 되어주는 맑고 고고한 스님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