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49] 스캇 팩의 ‘그리고 저 너머에’를 읽고...

pumpkinn 2011. 5. 28. 12:59

 

 

 

그리고 저 너머에 리뷰

 

리뷰에 앞서...

알랭 드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읽다가 독서축제 제출 기간이 다가오자 그제서야 부랴부랴 책을 집어들었다. 그러니 사실 집중이 잘 되지는 않았다. 마음은 딴 곳에 가있는데 억지로  마음을 이쪽으로 끌어올라니 집중이 될리가 있나. 그래도 일단 읽어야 수업에 임할 수 있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는 첨 인것 같다. 그것도 그렇게 존경해 마지 않는 스캇 팩의 책을 말이다. ‘아직도 가야할 길을 얼마나 감동 속에 읽었더랬나. 그의 따뜻하고 자상한 설명에 얼마나 감동였고, 그의 은근한 유머에 얼마나 배꼽을 잡으며 그렇게 행복해 하며 읽었었나...

선생님도 그런 나를 눈치 채셨는지 한 말씀 콕 찔러주시고, 그제서야 나는 정신 버쩍 들어 집중하기 시작했던 그리고 저 너머에..’

 

책을 읽다가...

<그리고 저 너머에>를 읽으며, 그의 첫 책인 <아직도 가야할 길>이 자꾸만 비교가 됐다. 거의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이이라 자연스런 현상이었던 것 같다. 다만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는 젊고 패기 넘치는 열정적인 스캇 팩을 느꼈다면, <그리고 저 너머에>는 노파심에 부연 설명이 많아지는 할아버지 스캇 팩이 느껴진다.’라고 말했던 나의 느낌이 꼭 옳았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또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지 아녔을까? 그가 지금까지 쓴 모든 책들을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마다, 경우마다 언급하며 부연 설명을 다는 스캇 팩에게서 지난 날을 그리워하며 회상하는 듯한 할아버지가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그는 너무나도 폭 넓은 다각적인 시각으로 그 어떤 경우나 케이스도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나 신앙에 얽매어 두지 않았다. 내가 가장 감동 받았던 부분이 그 부분이었고, 바로 그런 그의 깊고 깊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 나는 절절한 감동을 느꼈더랬다.

특히, 나를 뜨거운 감동으로 이끌었던 것은 그는 깊은 신앙을 가진 신앙인이었음에도, 잘못된 신앙으로 정신병에 걸려서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에게는 신을 그의 삶에서 빼어 냄으로써 그가 온전한 인간으로의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치료해주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에겐 충격이었다. 하느님을 들먹거리지 않고, 하느님을 말로만 앞세우지 않고, 그야말로 온전히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한 인간이 하느님이 부여해주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삶을 제대로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하느님 원하시는 것 아녔겠나.

어쨌든,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는 그의 깊고 깊은 인간애와 그의 따뜻하고 포근하면서도 힘과 열정이 느껴지는 자상한 설명에 감동을 넘어선 감동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같은 자상함이고, 같은 따뜻함인데 <그리고 저 너머에>서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마도 자신의 모든 책을 요약 설명하는 듯한 필체가 나에게는 약간의 거부감을 주었던 것 같다. 스토리 전개에 빠져 들라치면 내가 <아직도 저 너머에>에서 썼듯이..“ “<스캇 팩 박사의 평화만들기>에서 이야기 했듯이..” 등등이 책 전체를 두고 연속 반복이 되니까 몰입도르 깨뜨리며, 책의 흐름이 자꾸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이지, 그 책을 읽는 것이 아님으로...

다른 작가들도 자신들의 전작에 대한 내용을 종종 언급해도 이러한 거부감이나 불편함이 없었는데, 왜 유독 이 책에서는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일까 의아했다. 어쩜 아마도 자신이 쓴 모든 책에 대한 내용을 조목조목 인용했기에 그런 느낌이 들었던건 아닐까? 하는 나름의 결론도 내려보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깊음에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신에 대한 경외심은 요즘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신앙적 변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가 수녀원에서 꾸었던 꿈 이야기는 나의 영혼의 방황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명확한 모습을 보여주며 나를 눈물 흘리게 했다.

게다가 그가 그렇게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그렇게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음은 그가 하루에 하느님과 마주 하는 시간 속에 우선 순위를 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내게는 놀라움이었다. 그렇게 많은 역할을 맡고 있는 그도 45분씩 하루 세번을 하느님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데 스캇 팩만큼 유명하지도 바쁘지도 않은 나는 무척이나 바쁜척 하며 하느님을 만나지 않는다는 사실. 덕분에 하루 중에 나도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을 진지하게 가지려고 실천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어쨋거나, 내가 그를 존경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는 ‘종교인’이 아니라 ‘신앙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앞뒤좌우상하로 꽉막힌 크리스챤을 많이 봐았다. (나도 크리스챤이다.) 그가 하느님을 들먹거리는 종교인이었다면, 잘못된 신앙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캐시를 그렇게 구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를 더 지독한 죄책감으로 몰라 결국 끔찍한 결론으로 이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크리스챤이지만 ‘종교’에 얽매이지 않는 하느님이 두려운줄 아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기에 자신이 해야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그는 그것을 실천했다. 그녀에게 잘못 인식된 종교를 빼내줌으로 그녀를 온전한 인간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치유해준 것. 바로 죽어가는 걸인들을 구해주고 그들의 종교 의식대로 장례를 치뤄주었던 내가 너무나도 존경하는, 바로 나를 카톨릭으로 이끌었던 마더 데레사와 같은 신앙이다..

또한, 이 책 속에 위로를 받은 것은 스캇 팩 박사와 아내인 릴리와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었다. 남의 부부 생활이 힘들었음을 보고 위로됐다는 차원이 아니라,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내가 느낀 스캇 팩 박사의 부부 관게는 너무나도 완벽해서 그야말로 눈물나도록 부러웠던 부분이었다. 왜 그렇게 환상적인 남성들은 외국인이어야 했는지 하면서 분개했던 기억도 나고. 하지만 이 책에서는 결국 ‘부부’라는 것은 국적을 떠나 ‘여성’과 ‘남성’의 결합이기에,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할때까지 마찬가지 과정을 걸친다는 것을 내게 현실을 보여주었다. 부부는 서로의 성숙의 시기가 필요하고 그렇게 우리 인격이 성숙해지기 까지는 ‘고통’이라는 광야 시기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거기에는 지름길도 건너갈 수 있는 다리도 없다는 것. 우리는 ‘고통’을 통해 오는 축복을 그렇게 받는 것임을. 그렇기에 그 사랑은 고통 후에 더 깊어지고 더 성숙해져서 더 결합이 더 튼튼하게 이어진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둘의 다른 성격에 대한 언급을 읽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스캇 팩 박사의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의 ‘하느님’과 ‘유토피아’에 관한부분이었다. ‘하느님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존재이다’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하느님도 변화의 과정 속에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모습을 본따 지어진 인간인 우리, 지금 현재의 우리 인간의 모습은 바로 과거의 하느님의 모습이며, 지금의 하느님의 모습은 바로 미래의 인간의 모습’이라는 스캇 팩 박사의 말은 놀라웠다. 뭐랄까..? 갑자기 체한 듯한 느낌. 그랬다. 왜냐면 잘 소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놀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을 잘 생각해보면 성경 안에서도 변화된 하느님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구약의 정의와 분노의 하느님과 신약의 시링과 자비의 하느님. 어쩌면 교회가 시대에 맞춰 인간이 하느님을 좀 더 가까이 올바르게 알 수 있도록 변하듯이 하느님도 그렇게 변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하느님의 본질이 변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우리의 싦의 눈높이에 맞추어 변하고 계신다는 뜻일게다. 소화도 제대로 못 시키면서 감히 해석까지 할래니 벅차다.

어쨌거나 그의 과정 속의 하느님과 우리가 유토피아에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와 같은 맥락으로 역시 변화 속에 있는 유토피아기에 우리가 도착했을 쯤엔 이미 우리가 원했던 유토피아 없어지고 다른 유토피아로 변해가고 있기에, 유토피아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언제나 미래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 그것은 우리가 이미 도달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너무나도 공감 동감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끊임없이 무언가를 위해 가고 있고 갈망하고 간구하는건지도 모른다. 꿈을 이루고 나면 새로운 꿈을 꾸고,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꿈으로의 과정 속으로 뛰어들고...

 

리뷰를 마치며..

안다. 나의 리뷰가 깊지 못했음을.. 깊이있게 읽지 못했기에 당연한 결과물이다. 스캇 팩 박사의 결론은 ‘결국 모든 것은 하느님을 향한다’였다. 책 전체를 모노톤으로 읽어오다가 갑자기 절정으로 오르며 가슴이 쿵쾅대는 그런 클라이막스가 느껴졌다.

C.S. 루이스가 그의 위대한 설교 ‘영광의 무게’에서 지적했듯이, 마음이 너그러우신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비현실적이거나 결코 성취할 수 없는 것을 바라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음식이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목말라하는 것은 마실 물이 있기 때문이다. 성적 만족감을 성취할 수 없다면 성적 욕망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영광의 경험’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그 영광을 갈망하는 것은 하느님은 우리가 그와 함께하길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된 영광은 우리 자신을 참된 하느님께 바칠 때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P406~P407)

리뷰를 마치며 굳이 부탁하지도 않은 의견 한 마디를 붙여보자면, 제목이 ‘그리고 저 너머에’라기 보다 ‘스캇 팩 박사의 회고록’이라고 했으면 어쩜 더 읽기 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감..해보았다.

 

스캇 팩의 그리고 저 너머에를 읽다가.. – 초서

 

P21 레오나르도 호그슨 –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이성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니라, 이성이란 불완전하다고 믿는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논리적 이해를 돕기 위한 다른 형태의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은 논리적 이해를 돕기 위한 다른 형태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이 진정한 자아를 갖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P21이성이란 말 대신에 나는 생각과 그것이 내포하는 모은 것으로 대체하고 싶다. 호그슨이 언급한 , 내 생각으로 게으름, 두려움, 오만등과 같은 원죄의 복합적 의미이며, 그런 요소들은 인간의 잠재적 가능성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막아 버린다. ‘이성이 진정한 자아를 갖도록 교육한다는 의미는 우리의 진정한 자아가 가능한 무엇이든 될 수 있도록 허용하며, 가능성의 극한까지 갈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 마릐 핵심은 뇌, 더 구체적으로 전두엽을 신뢰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인체 기관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P31 시인인 엘프레드 로드 테니슨 - “진실을 가장한 사악한 거짓이다.”


P33 그들은 광고에서 어떤 시리얼이 건강에 좋다고 하면 그런 주장이 타당한지 의문을 가져 보지도 않은 채 그 시리얼을 사 먹어야겠다는 강박 관념을 가진다. 그들은 주로 분수에 넘치는 비싼 자동차나 그 외의 다른 문화 용품들을 사는 데 가치를 부여하며 그 결과 오랫동안 채무에 시달린다.

>> 현실 속의 씁쓸한 우리의 모습...


P35정상적인 것또는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것이라는 데 근거한 단순한 공식만을 고집한다면, 그 결과 외적인 혼란까지는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적 혼란은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P40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교파만이 유일하게 신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잘못이다. 신은 가장 본질적인 것에 관심ㅇ르 기울이지, 어떤 표지를 달고 있느냐에는 관심이 없다.

>> 절대 공감 동감이다~!! 자신들의 교파만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숨이 콱콱 막힌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절에가서 불상을 깨부수고 하는 것 아닌가.. 언젠가 기독교인들이라는 사람들이 절의 불상 목을 모두 잘라 놓은 것을 보며 정말 어이가 없어 치를 떨었더랬다. 하느님은 그런 사랑을 가르치셨나..? 그게 사랑이라고 그들은 말할 수 있는건가..? 그들이 알고 있는 신은 어떤 분인지 분통터지게 알고 싶다.


P49 어떤 경우든 문제 해결 과정에서 나타나는 적절한 고통을 피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성장을 멈추고 그 상태를 갇혀 버리고 만다. 성장과 치료 과정이 없다면, 인간의 영혼은 시들어 가기 시작한다.

P50 만약 우리가 충분히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지 우리의 문제는 아니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뇌를 이용하여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이용하고, 학대하며, 지배하거나 당신을 의존적으로 만들거나 두려움에 떨게 한다면, 문제는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은폐된 동기는 당신으로 하여금 올바르고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P51 사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말하고 느끼며, 진정한 주체적 존재가 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 성장을 하려면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P52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는 말은 진실이다. 당신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생각하는 것이 곧 당신의 모습이며, 당신이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도 당신의 한 모습니다. 우리가 생각학나 또는 생각하지 않는 선과 악 그리고 그 중간의 모든 것들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드러내 보여 준다.

P53 우리의 사고와 감정을 측정하는 과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알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꺼이 이해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이것은 자기 성찰이면서 동시에 의구심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의심해 본다는 것은 지혜를 쌓아가는 출발점이다.

P59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의사소통을 잘 하려고 최선을 다할 떄,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 일은 게으름과 두려움을 극복할 때 가능하며, 언제나 힘든 노력을 필요로 한다.

P59 잘 듣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말에 최대한 집중을 해야 하며, 그것은 아주 넓은 의미의 사랑 표현이다. 잘 듣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점은 다른 사람의 세계를 가능한 한 많이 경험해 보고 그의 입장이 되기 위하여 자신을 괄호 속에 묶어 두는 훈련, 즉 자신의 선입견, 사고의 틀 그리고 욕망 등을 잠시 포기하거나 옆으로 밀쳐 두는 것이다

P60 잘 드는다는 의미는 곧 자신을 괄호 속에 묶어 두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일시적으로 다른 사람의 존재를 완전히 수용한다는 의미이다.

P66 나의 일상적인 습관에는 하루에 총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데, 세번에 걸친 45분간의 휴식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의 1/10정도를 하느님께 말씀 드리는 일 (대부분 사람들이 기도라고 생각하는)에 쓰고, 또 다른 1/10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일(묵상이라고 정의되는)에 쓴다. 나머지 시간 동안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생각하고,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분류하고, 여러 가지 가능한 선택들을 숙고해 본다. 내가 이 시간을 기도 시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명상 시간이라고 부른다면 사람들이 이 시간을 신성하게 여기지 않아 편한 마음으로 나를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과 유사하다.

P67 기도가 의미 있는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P83 자의식을 갖게 되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실체로 의식하게 된다. 그 결과 자연 또는 그 밖의 다른 존재들과 하나라는 느낌은 사라진다. 이런 상실감의 상징이 바로 에덴 동산에서의 추방이다. 아담과 이브가 더 높은 차원의 자의식을 가지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그들이 깨닫게 된 사실은, 의식은 행동을 유발하게 되고 그들이 선택하는 행동은 그에 따르는 책임 때문에 영원히 부담스러운 것이라는 점이었다.

P84 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의지도 갖게 되는 것이다. 신이 자신의 모습을 모방하여 인간을 창조한 의미는 진화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부여한 데 있다.

P84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의식을 가진 인간은 축복받은 존재이며 동시에 저주받은 존재이다. 인간은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악의 실체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P95 우리에게는 적당한 죄의식이 주어져 있어서 우리의 죄가 통제선 밖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지으려는 마음을 막아 주는 가장 효과적인 안전 장치이다.

P105 초월적 자아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비슷하다. 앞서 예를 들었던 대학 총장의 경우처럼, 초월적 자아를 가진 개인은 자신의 감정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감정들을 조화롭게 잘 통제할 수 있다. 그가 슬픔을 느낄 수도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간결하게 말할 수 있다.

 

P119생각해 봐. 전 우주의 창조자가 시간을 내서 나와 함께 달렸단 말이야.” 그녀는 기쁨에 겨워 소리를 질렀다.

>> 우주의 창조주가 함께 달리다니.. 그녀의 기쁨은 나에게도 가슴 벅찬 기쁨이 되어 뭔지 모를 뜨거운 눈물이 내 뺨을 타고 내렸다.


P120 신은 우리가 전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듣고 따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열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이다.


P122이봐, 스캇. 넌 마땅히 내야 할 돈을 내면 되는 거고, 운전은 내게 맡겨.”

>> 눈물이 흘렀다. 마치 하느님이 내게 해주시려는 말씀을 스캇 팩 박사의 입을 빌려서 말해주시는 것 같았다. 바로 지금 내게 가장 필요했던 말씀. 왜 내가 운전대를 잡으려 하나.. 그저 하느님께 맡겨드리고 그거 나를 이끄시는대로, 데려가시는 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을..


P125 신을 믿느냐고? ‘믿는다는 말은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을 때 사용하는 말이지. 아니, 난 신을 믿지는 않아. 나는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 83세때 카를 융이 인터뷰에서 한 말.

P127 영혼이란 신이 창조하고, 신에 의해 육성되는, 독특하고 발전적인 불멸의 인간 정신

P128 우리가 자신의 영혼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그것을 잘 가꾸거나 잘못 가꿀 수 있다.

P136 조나단 스위프트 – “우리 인생의 후반부는 전반부에 저질렀던 온갖 어리석음과 편견 그리고 잘못된 생각 등을 모두 치유하는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P138 당신의 의지는 당신 자신에게만 매어 두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당신 자신보다 훨씬 더 차원 높은 힘에 매여야 한다.

P148 겸손은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정확히 아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는 것,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의 좋고 나쁜 점을 균형 있게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P149 우리 자신에 대해서 항상 긍정적으로 느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 (이것은 자기 도취적이며, 우리의 자부심을 끊임없이 유지시켜 나가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다) 과 우리 자신이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것은 바람직한 자기애이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성숙한 정신 건강을 위한 선행 조건이다.

P163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 속에 들어 있는 낡은 것을 비워야 한다.


P172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이 없는 상태는 용기가 아니다. 두려움이 없는 상태란 뇌가 손상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 하하하하~ ^^ 스캇 팩 박사의 은근한 유머~ 역시 내가 참 좋아한다. 알랭 드 보통의 미칠 듯한 유머와는 다른 분위기지만..^^


P173 용기란 두려움이나 고통을 느끼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다. 당신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하게 되면, 당신은 더 강해질 뿐만 아니라, 성숙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P173 죽음은 인생의 가장 큰 모험이기 때문에, 이승에서의 시간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며 동시에 가장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다.


P207 사랑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는 없다. 여러 인간 관계 속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변화시키려는 모습을 많이 본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생각과는ㄷ ㅏㄹ리 대체로 이기적이고, 지배적이고 사랑과는 무관한 일이다.

>> 구구절절 공감~!!


P209 당당히 비판을 받아라 Face the Music~!!” 이말은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P214 운명을 믿건 믿지 않건 소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많은 곹오과 번민을 거친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P216 신이 우리 모두에게 내려 주는 각각의 소명은 반다시 우리를 성공에 이르게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세속적 의미의 물질적 성공은 아니다.

P219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선택하는 문제가 아닐지도 ㅁ른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하나ㅢ 선물이라고 믿고 있다. , 선물을 받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신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강한 의지 외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다.

P262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다른 사람들의 경계를 인식하면서, 언제 어떻게 그 경계를 존중해 주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경계를 선택하고 설정하는 것이다.

P295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것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 에드먼트 버크

P368 은총은 역설이다. 한편으로는 은총은 노력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왜 은총으로 축복받은 존재가 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인가에 대해 이미 여러 가지 이유를 들었다. 반면에 은총을 받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그것은 우리의 손길을 빠져 나갈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은총에 다가 가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가 은총을 선택하고, 동시에 은총이 우리를 선택한다는 역설은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나 우연히 나타난 가치 있거나 기분 좋은 선물이라고 정의한 뜻박의 발견이라는 현상의 본질일 것이다.

P380 영혼과 자아이 가장 큰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 자아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또는 우리가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기 이미지의 껍질에 가까운 반면 영혼은 더 깊이 내려가 존재의 핵심에까지 이르는 것으로, 우리는 그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P398 자유 의지란 우리가 자유롭다는 뜻이고, 우리가 자유롭게 선이든 악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그 순간에, 이미 선뿐만 아니라 악도 이 세상에 던져졌다.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기 때문에, 하느님은 더 이상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은 스스로를 구속하셨고, 그로 인해 하느님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하느님은 인간에게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P403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화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 나는 살아 있는 하느님을 선택했기 대문에, 나의 하느님 역시 변화하고, 배우고, 성장하고, 어쩌면 춤을 추고 웃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