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46] 이태경 유고집 '세상은 참 좋았더라'를 읽고...

pumpkinn 2011. 3. 27. 13:01

 

 

 

이태경 유고집 세상은 참 좋았더라를 읽고...

 

리뷰에 앞서...

얼마 전 사무실에 놓여져 있는 소포. 풀어보니  이태경 유고집 - 세상은 참 좋았더라’. 그레이스님께서 보내주신 어머님 유고집. 드디어 왔구나. 오랜 기다림이 함께 했던 책. 기쁜 마음으로 뜯어보며 감사한 마음과 함께 무엇보다 우선  그레이스님이 떠올랐다. 오랜 산고의 고통을 거쳐 세상에 나온 책. 그레이스님이 이 책을 받아들으시던 날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을까..? 안봐도 비됴다. 감성여린 그레이스님 몇 번이나 재 편집하시며 겪으셔야 했던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어려움들. 그 어려움조차 사랑으로 즐겁게 해내셨음을 너무나도 잘 안다. 물론 내가 가까이 함께 하며 곁에서 보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레이스님게서 얼마나 이 유고집을 사랑과 정성으로 지나친 피로로 눈 수술까지 받아가시며 편집하셨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뭉클함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그레이스님께서 마음으로 내신 어머님과 자식간의 마음이 담겨진 책, 나도 마음으로 읽고 싶었다. 아니 싶은게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질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아름다운 그레이스님.. 사랑해요..^^

 

 

우연히 블로그를 통해 그레이스님을 내 삶안에서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진지 벌써 5.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내 블로그에 오셔서 당신의 느낌을 댓글로 달아주신 것이 인연되어 그레이스님과는 나이차가 무색하게 그렇게 사랑을 주고 받으며 내게는 이름만 불러도 가슴에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런 소중한 분이 되었다.. 처음 그레이스님의 댓글을 읽으며 나는 글에서 느껴지는 소녀적인 감성에 나와 비슷한 연배나 나보다 어린 분이신줄 알았던 기억에 살포시 웃음이 나온다. 가까이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 굴뚝이지만 행여 예의에 벗어날까 나는 여전히 그레이스님으로 부르고 있다. 그 당시 하루가 멀다하고 수시로 그레이스님 플래닛에 드나들며 하루 일상을 조목조목 나누며 깔깔대며 함께 나누던 시절. 그레이스님의 플래닛은 마치 우리만의 이야기 다락방처럼 하루에도 몇번씩 들락거리며 코주알메주알 다 쏟아부으며 남편땜에 속상한 이야기도 다 일러바치고(?^^) 그럼 그레이스님 맞장구 치며 받아주시면서도 남편을 이해시키고 올려주시며 나를 달래주시곤 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날때마다 얼라마 깔깔대며 좋아라 했었는지. 내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 진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하루도 안가고 못배기던 우리들의 공간. 그레이스님께서 네이버로 이사가실 쯔음 나도 삶이 바빠진 것에 변명을 하며 그렇게 걸음은 뜸해졋으나 이멜로 소포로 그렇게 우리의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안보인다고 사랑이 식어지는 그런 인연이 아닌 우리 아닌가...

그레이스님과 가까워지면서 선물 받은 그레이스님의 첫번째 책  내 어머니 이태경 여사그 책을 밤새도록 읽으며 울다 웃다 난리 부르쓰. 그 깊은 감동 잊을까 컴앞에 앉아 느낌을 올리던 기억. 참으로 아름다운 기억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태경 유고집을 읽게 되었으니. 타고난 복으로 줄을 잘 서는 덕에 귀한 책을 또 읽게 되었으니 멀리있는 나이어린 친구를 기억하고 보내주신 그레이스님께 감사한 마음 한 가득이다. 이런 귀한 인연을 내게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서론이 너무나도 길었나..?

 

책을 읽다가...

내 어머니 이태경 여사를 읽은 다음이라 편지 왕래 중에 오가는 내용들이 더 깊이 느껴지고 선명하게 그려져 그 느낌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읽는 내내 내게 어머니는 겸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시는 듯 했다. 읽는 모든 글 속에서 느껴지는 어머님의 겸손, 당신은 그렇게 한 평생 당신의 삶을 온전히 자식들에게 바치셨음에도 행여 당신이 자식들이게 짐이될까 조심조심. 그러시면서 도움이 필요하거나 궂은 일엔 먼저 앞장 서시고 좋은 일은 모두 당신이 복이 많아 영광 보신다 하시고, 어려운 일은 모두 당신 탓이라 하셨던 어머니.

어머님의 둘째 아드님이 대통령 상 받을때 그 기쁨 마음을 시로 표현하신 것을 읽고는 어머님께는 기쁨의 표현이었던 시지만 내게는 북받치는 눈물이었다. 여섯 남매 앞세우시고 아버님 산소로 오르시며 결국 급기야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시며 통곡하시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람불면 날아갈까 입김 불면 쓰러지실까 조그맣고 가녀린 체구로 아버님과의 사랑의 선물인 여섯 남매 그렇게 훌륭하게 키워놓으시고 영광스런 순간까지 맛보시니 그 감회는 기쁨이시고 감사며 또한 지난 날들의 장면들이 어머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지 않으셨을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어떻게 그렇게 그런 와중에 자세 하나 흐트러지시지 않고 그렇게 꼿꼿하게 자제분들을 키우셨는지. 그러시면서도 없는 이들과의 나눔을 일상 속에 보여주셨고, 겸손이 무엇인지를 몸소 눈을 감으시는 그 순간까지 보여주셨고, 그렇게 공부 시키고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워놓으셨어도, ‘너희 키우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하며 보통 어머니들이 쉽게 하시는 말씀을 하시기는 커녕, 늘 당신이 짐이 되실까 조심조심 무용지물 에미라며 미안해 하셨고, 자식들 마음 헤아릴 줄 모르는 목석 에미라며 그렇게 스스로를 낮추셨다.

글을 읽으며 참으로 겸손이 무엇인지, ‘가족 사랑이 무엇인지,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형제 우애가 무엇인지, ‘이웃사랑이 무엇인지 내 영혼 깊숙까지 박혀들어왔다. 읽는 동안 나는 내내 엄마를 떠올렸고, 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 극진한 가족들을 보며,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지금의 내 모습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었던 시간. 과연 나는 엄마가 다치실까, 아프실까, 그렇게 마음 졸이며 엄마를 사랑을 생각한 적이 있는지.. 늘 당연히 나를 지켜봐주시는 엄마였고 늘 그렇게 계셔주는 엄마를 당연히만 생각했던 내자신. 엄마에게 너무나도 죄송스러워 눈물이 나왔다.

책을 읽으며 또한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손자 손녀들의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었다. 10원짜리 동전이 들어가면 5천원 만원이 되어 나오는 할머니의 요술 주머니. 결혼한 손녀 딸 수경, 할머니 보고싶어 밤새 울었다는 편지를 읽으며 손자 손녀들에게 어떤 할머니셨는지 느껴졌다. 군대가는 손주를 배웅하시며 차마 돌아서지 못하시며 눈물 흘리시던 할머니를 떠올리는 손자 용우. 할머니를 기억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그가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아름다웠는지. 그는 바로 어머님 가슴에 묻은 사랑하는 며느리 한은숙의 아들래미 아니던가. 그 손주들 뿐만 아니라 모든 손자 손녀들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를 읽으며 가씀이 뜨거워졌다.

잠시 미국에 떠난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보낸 아들 딸 며느리 손주들. 이렇게 당신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게 하셨던 어머님.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당신의 존재를 그렇게 깊이 의식케 하셨던 어머님의 그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항상 당신을 낮추시는 겸손한 당신의 모습. 그러시면서도 깍듯한 예의와 말없이 배푸세는 깊은 배려로 당신의 기품 더 아름다운 향기내어 피게 하셨던 것 아닐까. 당신의 그 모습에 함께하면 반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분으로 함께 하는 모든 이는 매료 되었던 것 같다..

인제 어머님은 아버님 곁으로 가셨다. 그렇게 그리우셨던 아버님. 가슴 속에 깊이 묻어두시고 힘드실때마다 기쁘실때마다 함께 나누셨을 어머님. 그렇게 어머님의 가슴 속에 살아계신 아버님. 어머니는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을 사부곡으로 쏟아내셨고 그분 곁에 가시고 싶으셨던 마음. 인제는 아버님 곁에서 못다한 사랑 모두 나누시고, 함께 누리지 못한 행복 다 누리고 계시겠지. 평생 그렇게 고운 자태 잃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당신의 기품 흐트러뜨리지 않으시고 그렇게 주무시며 고운 모습 그대로 아버님 곁으로 가셨다.

 

리뷰를 마치며...

지난 일주일 나의 생활에 함께 했던 책. 스타벅스에도 함께 가고, 까페 프란스에도 함께 가고, 쇼핑에도 빵집에도 함께하며 그 곳에서 나는 이 책을 읽었다. 공교롭게도 눈물이 쏟아질때는 왜 꼭 나는 집이 아닌 스타벅스에 있었는지.. 인제 스타벅스에 자리한 구석 소파를 보면 어머님이 함께 떠오를 것 같다. 그렇게 눈물 콕콕 찍어내며 허둥대던 나를 의아스럽게 바라보시던 브라질 아저씨도 덩달아 떠오를 듯 싶고..

읽는내내 내 어머니 이태경 여사를 읽을 때와는 달리 웃기보다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꺼이꺼이 북받치는 슬픔. 어머니의 슬픔이 내 슬픔이 되어 눈물되어 흘렀고, 어머니를 사랑한 모든 이들의 눈물이 내 눈물되어 가슴에 흘렀다.

어머님을 대한 이후 애리와 리예에게 대하는 나의 태도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침묵할 줄 아는 엄마, 따뜻한 눈빛으로 말하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대단한 발전이다. 나도 언니들께서 내가 누구의 딸인데..”하는 자부심을 딸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않아도 좋다. 단지, 그렇게 온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사랑한 엄마였음을 아이들이 느끼길 바라는 마음인게다.

인제 일주일 동안 함께 했던 어머님과 헤어질 시간이다. 아니 어머님과의 헤어짐이 아니라 책과의 헤어짐이다. 어머님의 삶은 내 안에 함께 할 것이고 어머님의 가르침은 내 안에 깊이 녹아져 있다. 앞으로 이 마음이 흐트러지려 할때마다 다시 들춰보며 나를 도닥거리겠지.

그레이스님 고마워요. 제게 안겨주신 아름다운 시간. 가슴에 그대로 담았습니다.

사랑과 그리움을 가득가득 담아..

펌킨 올림.

 

  • 올리는 말씀:

초서나 리뷰를 하면서 큰 오빠, 큰 언니 또는 새 형님하며 마치 제 가족인양 호칭한 것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가족이 일원이 아니라 큰 오빠 되시는 분, 큰 언니님 또는 새 형님 되시는 분하면서 표현을 하자니 무척 어색하기도 했고, 또한 그레이스님을 통해 이미 마음으로 가깝게 느껴지시는 분들이라 그렇게 호칭을 했습니다. 예의를 벗어난 행동, 용서를 구하며 양해를 구합니다.

 

                

 

이태경 유고집 ‘세상은 참 좋았더라를 읽다가 초서

 

P16 형님의 뒤를 그림자 같이 따라다니며

      잠시만 안 보여도 서로 찿고 태산 의지

>> 어머님과 형님께서 서로 눈에만 안보이시면 서로 찿고 찿으시는 모습이.. 죄송스럽게도 얼마나 귀여우신지 읽으면서 자연스레 그 모습이 그려져서 웃음이 나왔다. ^^ 처음으로 형님 따라 나서시며 남해 일대를 여행하시고, 그 깊은 역사와 선인들의 충의가 묻어있는 아름다운 유적지 풍광을 감동 속에 보시고 여행 보내주신 자식분들 함께 가자신 형님께 감사한 마음 고마운 마음에 이렇게 글로 표현 하신 어머님.. 어머님의 섬세한 터치에 그저 읽는 내내 놀라울 뿐이다.


P22 유람한 소감을 물으나 만고 무식이 먹통이라

시 한 수 짓지 못하고 무미 무도 주변 없어

이야기 한 마디 못하니 흔적이 묘연하다.

평생에 처음이요 다시없을 기회라

이것이나마 기념으로 남기고져 지필을 대하니

찬사만단 나의 회포 고금사가 새롭구나.

>> 어머님의 겸손하심. 그렇게 가신 곳곳 풍광느낌 장면들 섬세하게 현란하신 표현력으로 운율맞춰 글로 표현하시고는 만고 무식이 먹통이시라며 당신 글을 낮추시니, 이런 남해 기행문 우리가 또 어디서 접할 것이며 어머님의 깊은 느낌 어디서 함께 느껴보겠나. 오로지 자식들 뒷바라지에 행여 당신 짐되실까 조심조심 당신을 보이지 않게 그림자처럼 지내신 어머님. 이렇게 67세에 처음 남해 여행가시고는 그 큰 감동을 어쩌시지 못하고 이렇게 글로 남기시니 자손대대 후손은 말할 것도 없이 이렇게 줄 잘 선 덕이 나까지 읽게 되니 얼마나 감사한지..


P27 ! 기쁘다 오늘의 나의 영광이여

아직 철없고 어린 너희 육 남매를

광막한 서울 처지 집도 한 간 없이

복잡한 길 바닥에 혈혈히 버려두고

영원히 가신 너희 아버지

그때 아득하던 정경을 하늘이 아시었던가

 

그 후 파란 많은 세월은

사정없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이십 년

그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아무 불평도 불만도 없이

묵묵히 노력하여

너희 육 남매는 하나도 낙오 없이

험준한 가시밭 길을 걷고 또 밟아

무한한 인내와 극복으로

오늘날 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을 차지하였구나

 

불민한 어미 속수무책으로

천수만한을 가슴에 안은 채

너희 귝 남매를 앞에 두고

한없는 고생을 바라볼 때

얼마나 가슴 아프며

마디마디 뼈골이 저리건만

너희들은 말없이 성실하였다 발전하였다.

 

! 나의 육 남매여

킬이 건강 하라 전진 또 전진하라

명천이시여 천지신명이시여

길이 두호 하옵소서.     

                                                                                  1979 4 21

                                                                                  차남의 대통령상 수상을 기뻐하며

>> ‘내 어머니 이태경 여사를 읽으며 나를 꺼이꺼이 울게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버님 장례식때 눈물 한 방울 흘리시지 않던 어머니. 보름날 아버지 산소 가는 자식들을 따라나서시고, 그 추운 날 자식들 앞세워 산소에 오르신 어머니. 피를 토하듯 우시던 모습. 내가 어머니 되어 그 느낌 그대로 느껴지니 어머니의 통곡은 나의 통곡되어 그렇게 서럽게 꺼이꺼이 밤새 울었던 기억. 옆에 있던 남편 무슨 일 있어..?’하며 의아해 하고.. 그책을 먼저 읽지 않았더라면 이 느낌을 그대로 내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일찍 혼자 되시어 자식들 키우시고, 그 자식들 모두 훌륭하게 자라 둘째 아드님 대통령상 받아 어머님께 영광 안겨드리시니, 어머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지. 그동안 당신없이 혼자 자식들을 그리 훌륭하게 키우실 수 있으셨음에 감사함, 그리고 그러기까지 견뎌내야 하셨던 모든 설움 고통 그모든 느낌들이 복합되어 어머님께 느껴지셨으리라.

둘째 아드님의 대통령상 수상을 기리며 읊으신 어머님의 시를 읽다가 울컥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버님 산소 앞에서 통곡하시던 어머님이 떠올라..

어머님..그 모든 영광 오롯이 당신것입니다. 이렇게 글로 어머님을 만나뵙게 됨은 저의 영광입니다..


P62 그대 계신 곳 어데메뇨

인간 세상을

훌훌이 떠나가신지 적은 듯 삼십년

세월은 말없이 고고가건만

가슴속 첩첩이 맺힌 시름이야

어느 날 여상하리요

생사 양길에 유명이 격절하니

묘연한 천지를 바라보며

심화를 억제하고

살길을 오모하기 여념이 없이

세월은 흘러흘러

꿈같은 연광은 팔십이라

효자 현부의 영효를 받아

일신이 안락한

천명을 다 살았으니 갈 길이 바쁜지라

그대 계신 곳 구원 만리나

어찌 못 가리요

속히 다려 가 주시면

감사 하리다

잊지 마시고

수이 상봉 하리다.

 

>> 초서하다 또 눈물이 났다. 아버님 여의시고 세월은 잘도 흘러 삼십년이 지났으니. 앞서 가신 당신을 그리시며 글로 남기신 어머님의 아버님에 대한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신 절절한 사랑. 요즘 젊은이들은 이 깊은 사랑을 알기나 할까.. 과연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나 할까..


P66 이것이 웬일이냐 야속타 아깝다

너는 명명 천당의 하느님 인도로 태평성대를 누린다 하나

너가 맡은 남편과 자식을 뉘게 부탁 하였나

철없는 것들 호곡지통과 너의 남편 허탈한 정경

초목도 느끼는 줄 너는 아는가 모르는가

>>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통곡하던 셋째 오빠. 그후 당신 몸이 상하실 정도로 방황하시던 오빠가 떠올라 눈물이 앞을 가렸다. 때마침 mp3에선 The saddest thing이 흘러나오고..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곳은 스타벅스. 갑자기 울컥 쏟아지는 눈물로 수습이 안되고 있다.


P67 무엇이 그리 바빠 어데로 사라졌나 그립다 아깝다.

밝으신 하느님은 인재가 아쉬우사

명찰한 너를 시급히 다려 가신가

인간 세상에 무긍한 너의 책임 너는 어찌 잊었느냐

시일이 갈수록 아쉽고 그립고 아까와 어찌할고

변함없는 세월은 여구히 흘러

괴롭고 슬프던 이 해도 저물어 가고

송구영신이 불원하니 인간 무상이 새롭고 슬프고 허무하다.

 

>> 그토록 사랑하던 며느님 먼저 보내시고 그 슬픔 달랠길 없어 마음으로 쓰신 편지.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왜 꼭 이럴때 나는 공공장소에 있는 것일까..? 참으려하니 더 흐느껴나오는 눈물.


P82 정교한 보석

도산 서원을 감돌아 흐르는

정결한 냇가에

한포기 귀한 화초로 피어나신

우리 어머님

 

칠흙같은 외내의 어두움을 딛고

한 개의 고고한 샛별로

빛나신 분이시여!

 

숱한 세월의 풍우에 고목들의 울음이 산을 덮어도

가는 허리 곧게 펴시고

시련의 돌작밭을 피멍을 지도록

초연히 걸어 오셨습니다.

 

여섯 가닥 어린 싹을

늠름하고 아름다운 거목들로 키우시느라고

굵은 손 마디 마디

 

굳은 시련의 자욱들은

73년을 말없이 고이 지내

이 맑은 가을 하늘 아래

가장 정교한 보석이 되어 빛납니다.

 

다함 없으신 겸손과 지고한 희생이

하니님의 손길을 축복이 되어 빚어져

 

이 가을

생신을 맞으신 어머님의 가슴 가득히

내리고 또 내리소서!!

                                        

                                                     1981 9 12

                                                     막내며느리 (한은숙)

 

>> 이렇게 이쁘고 지극정성 어머님을 사랑하던 며느리 한은숙이 사랑하는 남편과 세 아이를 두고 하늘로 먼저 갔으니 가는 그분인들 마음이 편하셨을까..? 올망졸망 눈에 넣어도 안아플 자식들을 남편 손에 맡기고 먼저 가는 그녀. 어머님 믿고 그리 편히 가셨을까..? 남편이  먼저 떠난 아내 오매불망 못잊어 그리 방황할 줄 아셨을까..? 어머님의 며느님 사랑이나, 며느님의 어머님 사랑이나 어찌 이리 닮은 분들로 한 가족이 이뤄졌을까.. 이 모두 당신의 덕이쎴고, 올바로 키우신 훌륭한 인격 덕분이었음을 우리 어찌 모를까..


P101 어머님의 세 딸 중에 아무 재능도 없고 용기도 없고 어쩌면 이렇게 못난 딸이 우리 엄마에게서 낳는가? 의심이 갈 정도로 항상 부족한 저입니다만. 언제나 저의 삶에 만족하고 아무에게도 원망 없이 사는 것이 저의 희망입니다.

손 서방 너무 빨리 퇴작하였다고 어머니께서 언제나 안타까워하시지만 손 서방이 그동안 한 이력을 생각하면 남들 두 평생 할 일을 그동안 다 해 낸 사람이라고 저는 자부합니다. 일 너무 많이 한다고 어떤 큰 힘이 아마 말렸는가 봐요. 그냥 손 서방이 자랑스럽고 저는 아무 불만 없어요.

>>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시기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셨던 큰 언니. 동생들이 대학 가는 것을 보시며 얼마나 당신도 가고 싶으셨을까..? ‘내 어머니 이태경 여사를 읽으며 그러셨던 언니를 보면서 언니의 깊으신 마음에 얼마나 감동을 하였던가.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셨던 큰언니를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렸더랬는가..

너무나도 나와 비교되었던 큰 언니. 가난 속에 찌들어 살던 그 시절. 동생들 모두 주루루 앉혀놓고 내가 나이가 젤 많으니 나부터 공부시켜라. 내가 대학 졸업하면 내가 니들 대학 뒷바라지 할거라며. 너희들을 위해 희생하는것 원하지 않고 너희들이 대학 졸업 하고 잘되는 것을 내 위로 삼아 살 자신 없다고 매정하게 말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물론 그 후 국립 대학을 들어감으로 동생들이 학비를 대줄 필요도 없어졌고, 동생들도 자기들이 알아서 대학을 들어가 아르바이트하며 학비 충당하니 내가 도움을 줄 필요도 없게 되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희생 정신이 결여된 나는 내가 아마 그레이스님의 장녀로 태어났다면 분명히 동생들을 위해 뒷바라지 한단 소리 못했을게다. 아니 안했을게다. 그래서 큰 언니를 너무나도 존경한다. 그레이스님의 모든 동생들이 큰 언니와 큰 오빠를 그렇게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비단 그 뿐만은 아니고 타고난 성품들이 우애 깊은 덕이긴 하지만, 그와 함께 고마움이 짙게 배어있음 아니겠나..


P101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욕심이 더 많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물론 많으면 좋은 것은 압니다만 현재에 만족하고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되니 언제나 마음을 다스려야 겠지요.

>> 너무나도 지혜로우신 큰 언니. 역시 그 어머님의 그 따님 아니시겠나..


P112 부부란 한 쪽이 너무 똑똑하면 한 쪽은 언제나 바보가 되게 마련인가 봅니다. 자식의 일도 저는 언제나 바보처럼 가만히 있으면 자기 혼자 다 처리해 나가니 이게 복인지 쑥맥인지 분간이 잘 안 됩니다.

>> 이 얼마나 지혜로우신 말씀이신지. 어디 바보가 스스로 바보인줄 아는가..? 항상 문제는 우둔한 것이 똑똑한 줄 알고 이리저리 다 참견하고 간섭하고 다니니 집안에 불화가 끊이질 않고 평화가 깨지는 것 아닌가..? 이렇게 당신을 바보라 스스로 낮추시며 그렇게 모든 일들이 순리에 맞게 기다리시는 지헤로운 큰 언니시기에 모든 일들이 그리도 순조롭게 다 처리되었던게 아니겠나. 참으로 지혜롭고 또 지혜로우신 큰 언니. 그런 분이시니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시기 위해 당신의 꿈을 접지 않으셨나. 그러시면서도 한번도 희생이라 표현하지 않으셨다. 큰 오빠께서 어머님을 모시는 것이 당연히 당신의 의무라고 생각하셨듯이 큰 언니께서도 같은 마음이셨으니.. 참으로 뵉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P113 실은 결혼해서 집을 떠나니 할머니 생각이 제일 간절했어요. 할머니 보고 싶어 혼자 울기도 했어요.

>> 할머니가 보고 싶어 우는 손자 손녀 과연 몇이나 될까..? 부모 없이 할머니가 혼자 키우신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경우는 쉽지 않을게다. 내 주위에서도 내 눈으로 본 경우는 거의 없으니..

이렇게 손녀에게도 보고싶어 눈물 흘리게 하시는 어머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내 작은 상상력으로는 감히 그려보지도 못할 뿐이다.


P114 할머니께서 늘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알뜰하게 생활하라고 당부하셔서 이번 달에는 이 서방과 일치하여 가계부도 착실히 적고, 하루에 4천 원씩 만 쓰면서 살아보았는데 정말 힘든 나날이었어요. 그렇지만 할머니 말씀대로 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재미있고 보람도 있어요. 앞으로도 이 서방 뜻 잘 받들고 알뜰히 생활하겠어요. 할머니!

>> 할머니의 뜻을 받들어 검소한 삶을 일상 속에 실천하고 계시는 손녀분. 할머니께서는 얼마나 기특하시고 대견하시고 자랑스러우셨을까..?

나도 지출이 많다고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곳으로 열심히 번 돈이 새어나가는 것이 아닌지 체크해봐야겠다.


P140 군대 간다고 제가 찾아 갔을 때 계속 걱정하시며 또 올때는 끝까지 배웅해 주시며 눈물을 닦으시던 모습이 너무 저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 걱정하시지 마세요. 저 손자 용우는 이곳에서 무슨 일에도 최선을 다하려는 각오이고 또 지금까지 그렇게 하고 있고, 2 2개월 동안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다시 할머니를 찾아뵈올 것을 약속드립니다.

>> 손주 하나하나 사랑으로 챙기셨던 어머님. 손주 손녀들 역시 어쩜 하나같이 이렇게 반듯하고 훌륭하게 자라주었는지. 특히, 눈에 밟히는 삼남의 손주들은 더욱 그러했으리라. 사랑하는 며느리 한은숙을 그렇게 차마 보낼 수 없는 가슴으로 떠나보내시고 방황하는 아들을 보며 그 어린 것들이 얼마나 안쓰러우시고 자나깨나 당신은 그네들 걱정이셨을까? 그런데 이리도 멋진 청년으로 자라주었으니 얼마나 기특하고 자랑스럽고 또 고마우셨을까..

끝까지 배웅해 주시며 눈물 닦으시던 모습. 읽으면서 흐르는 눈믈을 주체할 수 없었다. 초서하면서 또 눈물이 난다. 손주 용우는 군대 생활 힘들때마다 할머니의 눈물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인지.. 이래서 사랑은 돌고 돌고 도는 것. 이런 할머니의 사랑을 지극히 받고 자란 손주들은 또 얼마나 자신이 함께 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느끼게 해줄 것인가...


P152 둘째로는, 지난번 나의 금혼식 기념 때 내가 너의 새 형에게 쓴 글에서 언급하였지만 내가 19세 때 너의 새 형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사실을 들 수 있겠다.

그때 어른들께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따른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로서는 막연히 그렇게 따른 것이 아니고 내가 커서 부모님을 모셔야 할 맏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앞으로 더 나이들어 나에게 적합한, 나를 위주로 한 교육 받은 여자는 부모를 모시는 것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결국 부모님을 모시는 것을 우선하는 것이 도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이에 적합한 여자를 나의 아내로 만족하겠다는 각오로 결혼하게 된 것이다.

지금 어머님을 모시면서 너의 새 형이 어머님의 안목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나로서는 지금 이만큼이라도 어머님을 받을어 모실 수 있는 것은 너의 새 형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냐. 따라서 내가 그때 결혼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 ‘내 어머니 이태경 여사를 읽으며 단연코 나의 마음을 사로 잡으신 분 중 가장 큰 자리를 차지 하시는 분은 바로 큰 오빠이셨다. 역시 장남은 장남. 맏이 따라올 동생은 없다는 말이 사실인가.. 큰오빠께서는 어린 나이에 이미 앞을 내다 보시고 6남매의 맏이로써 어르신 뜻을 받아들이신 것도 너무나도 감동이고 다섯 동생분들로부터 큰 오빠를 그리도 사랑하고 존경을 받고 있음은 당연한 결과 아니겠나.

하지만 내게는 큰오빠의 그런 성품에 더하여, 당신도 어리시지만, 더 어린 나이에 당신께 시집온 아내를 공부해야 한다며 학교에서 돌아와 당신 공부로 피곤하실텐데 밤마다 새 형님을 공부 시키시던 모습은 내게는 충격이었고 감동이었고 감사였고 부러움이었다. 나의 이상형의 남성상 아니었나. 나에게 있어서 부부상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서로 아껴주고 이해해주고 존중하는 것과 함께 서로를 키워주고 함께 성장하는 것. 하지만 결혼이란게 모두 이렇지 않음을 알고서는 참으로 마음 안에 고통도 많았다. 그랬기에 오빠가 새 형님을 공부시키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주루루 흘렀더랬다. 유교 사상이 더 짙었을 그 옛날에도 이런 오빠같은 분이 계셨음은 왠지는 모르지만 내게는 위로였다. (물론 루도비꼬도 요즘은 그렇게 배구고 싶은게 많은 나를 배려해준다. 뒷수습을 위한 외교적 발언~? ^^;;)

암튼, 새 형님은 그런 남편이 얼마나 멋져보이고 훌륭해 보이고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셨을까..? 한국의 많은 남편상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지니셨던 오빠. 그 자상하심과 그 따뜻함, 그리고 아내가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그 많은 시누시동생 뒷바라지 함께 하시고, 어머님 잘 받들어 공경하시니 이렇듯 동생들과의 편지에서 당신 아내의 정성을 언급하시는 것 넘 자상한 남편의 모습 아닌가. 이 모두 아버님께 물려받으신 성품임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암튼. 큰 오빠 부분에서는 참으로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은 것 같다.


P153 지난 일을 생각하다가 결국 자기 자랑으로 귀결된 것 같아 이상하다.

>> 진지하게 읽어내려오다가 웃음이 빵~ 터졌다~ 하하하하하~ ^^ 유머러스하기까지 하신 오빠. 하하하하~ ^^ 그레이스님의 수박 이야기가 떠올라 웃음이 또 터졌다~ 하하하하~ ^^


P162 신학문이란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보시고 규중에 묻혀 혼자 익히신 글들이 어찌 그리 어렵고 유식한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께 가지고 가여쭈어 보고 풀이를 들어보면 주옥같은 문장들이 금방 이해되고, 새삼스럽게 어머니의 아름다운 글 솜씨에 탄복하게 되며, 우리는 왜 그 좋은 글 솜씨를 물려받지 못했는지 유감스럽기 짝이 없었다.

>> 놀라웠다. 신학문이란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보시고 규중에서 묻혀 혼자 익히신 글들이 이렇듯 깊다니.. 언니들께서 이해 못하시는 어려운 한자 섞인 글들이 당연 내게 쉬웠을까나.. 주석으로 달린 해석을 보며 다시 읽어보며 내려간 글들.

어머니 글을 읽으며 고전의 맛을 느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께다. 고전이란 학교 다닐 적에 읽어본 것이 고작. 고전이 이리 깊은 맛이 있는 줄 내 전엔 몰랐던 일들. 내게는 또 한번의 배움에서 오는 즐거움이 느껴졌던게다. 고전에 빠지시는 이유를 알겠더랬다. 첨엔 읽기가 쉽지 않을지 모르나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맛이 새록새록, 마치 우리고 우린 곰국이 진국이듯 어머니의 아름다운 운율로 마치 장구로 박자를 마주며 춤을 추듯 노래하듯 이어지는 글들은 내게 현대글을 읽을때와는 또 다른 재미을 가르쳐 준것이다. 배움의 즐거움이란...


P166 그 무섭던 일들. 어머니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태연하게 당하시니 고매하신 인격과 교양을 한 몸에 지니셨음을 그 때 어린 나에게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 기품이란 바로 이런게 아니겠나. 물론 배우고 익힐 수 있기도 하겠지만, 어머니의 고매하신 기품은 갖고 태어나신 것. 누가 가르쳐서 되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 무섭고 두려웠던 속에 어떻게 그렇게 꼼짝 않고 반듯하게 앉아계시어 그런 난폭한 군중들 틈에 그렇게 자신을 지키셨을까..? 그 조그마한 몸으로 어찌 그리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기품으로 그들 조차 손까닥 대지 못하고 그렇게 물러들 갔을까..? 그런 분이셨기에 아버님께서 그렇게 피흘리고 계시는 모습을 보시면서도 차분하게 대처하시고 뒷수습을 하실 수 있으셧던 것. 어머니는 가히 작은 거인이셨다.


P169 엄마가 치마는 워엤노?” 물으셔서 강물에 떠내려 갔다했더니 엄마 하시는 말씀. “같이 떠내려 가지, 왜 안 죽고 왔노?” 인숙이와 나는 엄마에게 매 맞지 않는 것만 좋아서 방으로 뛰어 들어갔던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어제 일인 양 내 기억에 생생하고, 그 아련한 낙동강의 추억이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 생각할 때마다 내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른다.

>> 어머님의 표현이 얼마나 웃기는지.. 읽다가 또 웃음이 빵~ 터졌다~ 하하하하~ ^^ 그렇게 혼나시고도 매맞지 않은 것이 좋아 신나 들어가는 큰 언니 작은 언니..^^ 그 모습도 넘 귀여우시고..^^

나도 혼나는 건 뒤로 하고 맞지 않음 얼마나 좋았는지..^^ 아빠는 때리는걸 무척 싫어하셨지만 엄마는 우리가 잘못했을때는 매를 드셨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거나 그럴때는 조용히 따로 불러 형제들이 없는 곳에서 일대일로 말씀을 하곤 하셨다. 왜 거짓말을 했는지, 그것이 갖고 싶었는지..등등 상세히 따뜻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나이가 들고 아이들을 낳고 보니 엄마의 지혜로움이 내겐 있지 않음이 참으로 한스럽다. 내가 정직을 배운 것도, 순간의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찬찬이 설명해 주시며 용서해주신 엄마의 따뜻한 사랑 때문이 아녔을까 싶다. 그것이 오늘날 사회에서도 신뢰라는 선물을 내게 안겨 주었고.. 감사할 따름이다..


P169 노래를 좋아하시고 아름다운 미성의 소유자이셨던 아버지께서는 오실 때마다 모두 둘러않게 하시고 차례로 노래를 시키시며 아버지도 한 곡조 뽑으시고, 하기 싫다는 어머니에게도 억지로 노래시키시며 즐거운 가족 음악회도 곧잘 열어 주셨다. 그때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좋아만 했었는데 그렇게 정서적인 면까지 세심하게 배려하여 자녀교육에 힘쓰셨던 아버지가 그저 놀랍고, 지금 생각하니 뼛속 깊이 감사한 마음 무딘 필력으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 마치 한국판 Sound of Music을 보는 듯한 느낌.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아버님이 계셨을까 싶다. 그저 아빠라는 권위의식 속에 자녀교육은 커녕 자녀 사랑도 잘 표현하지 않으시던 아버지상의 한국 아버지상 아니던가..? 아니면 내가 잘못 알고 있는걸까..? 암튼, 그레이스님네의 형제분들은 부모복은 타고 나신듯.. 이미 하늘에서 하느님께서 내려보내실때 행운권 추첨권 당첨은 모두 그레이스님네로 보내주신 듯 싶다..

울 아빠도 그렇게 자상하시고 이해심 많으신 분이셨고 내 평생 늘 나의 우상이요 이상형인 아버지셨지만 이렇게 음악적이시진 않으셨다. 물론 서로 다른 분. 비교를 할 수 없으시다. 하지만 이렇게 정서적으로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신경을 써주신 그레이스님의 아버님의 자식에 대한 남다른 사랑은 너무나도 깊으셨고, 그렇게 존경하고 사랑했던 어버지와 만날 수 없는 곳으로의 이별은 그리움에 사무칠 수 밖에 없었다. 삼십년이 넘은 뒤 사부곡을 지으신 어머님의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 인제는 아버님 곁에서 환히 웃으시며 못다한 사랑, 못다한 행복 마음껏 누리고 계시겠지...


P169 이토록 우리를 즐겁게 해 주신 아버지께서 대구에만 가시면 오래 계시고 안 오시니 우리들은 모두 기다리다 지쳐서 밤이면 호롱불을 켜놓고 다황점을 친다. 다황은 성냥의 사투리다. 성냥개비를 ㄷ자로 잡고 양쪽에서 맞대어 벌어지면 오실 날이 멀었고 좁아지면 곧 오신다 하였다.

>> 눈물이 핑 돌았다. 다황점은 아녔지만 나도 이랬던 기억이 있기에. 아빠가 사업에 실패를 하신 후 우리는 서울 집 짐은 모두 버리고 동두천으로 갔다. 그때는 내가 어려서 몰랐지만 회사 사장님이시던 아빠는 갑자기 모든 것을 잃으셨고, 아빠는 아내와4남매 (그때는 막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더랬다.)를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매일 서울로 가셨더랬다. 나는 아빠가 서울로 직장을 구하러 가시는건지 몰랐다. 그리고 아빠가 매번 새벽에 오시는 것이 서울이 멀어서 그런건줄 알았다. 아빠는 몇 달을 그렇게 매일 서울로 출근(?)을 하셨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하셧다. 하지만 아빠 손에는 언제나 동그란 깨엿이 식구 수만큼 들려있었고, 가끔씩 집 밖에 긴 의자를 내놓고 아빠를 기다렷지만, 깨어 있는 날보다 잠이 든 날이 더 많았더랬다. 엄마는 그런 나를 들어오라시지만 아빠가 기다려졌던건지 깨엿이 기다려졌던건지 모르겠다.

가끔씩 긴 의자에 잠이 들어있는 나를 안고 들어가셨다. 그러면 눈을 뜨고 아빠를 보며 좋아하던 나. 그럴때면 아빠는 아빠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라고 하셨다. 언제나처럼 들어있는 깨엿. 그것을 발견하고 좋아라 하는 내 모습을 보시며 웃으시던 아빠. 난 한번도 아빠의 그늘진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아빠의 표정을 가려내기엔 너무 어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후 아빠는 영어를 잘하시고 경영학을 전공하신 덕분으로 미8군 어카운턴트로 취직이 되셨고, 우리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여의치는 않았지만 우리는 다시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국민학교 3학년이 되어있었다.

아빠를 기다리는 날은 어찌 그리도 하루가 길었는지.. 집 바로 앞이 버스 정류장이라, 버스가 설때마다 아빠가 내리실까 내리는 사람들을 눈이 빠지게 쳐다보던 나. 마지막까지 아빠가 내리지 않으시면 실망이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기다리곤 했다. 기억 속에 잊혀졌던 어린 시절 이야기. 이렇게 다시 떠오르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P170 처음으로 엄마를 떨어 졌으니 밤 지날 일이 난감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초저녁부터 울기 시작하는데 아무리 달래도 끝없이 울어대니 나중엔 목이 다 쉬고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하여 오빠도 울고 나도 울고 오남매가 밤새도록 울었다.

>> 읽으면서 나도 울었다.. 육남매를 떨어뜨려놓고 떠나신 어머니 마음은 오죽하셨을까..? 엄마 없이 처음으로 밤을 보내는 육남매. 그 마음이 얼마나 서럽고 슬펐을까나..

이상하게도 우리도 어렸을 때 고만고만한 오남매. 엄마가 없어 하나가 울기 시작하면 우리 모두 따라 울던 기억이 난다. 울음도 웃음처럼 전염성이 강한가.. 괜히 내 설움되어 울던 기억..


P172 이러저러 부모님은 심신이 고달프셨지만 우리들은 그 과수원에서 잘도 커갔다. 봄이면 능금 꽃 활짝 피어 온통 분홍색으로 물들일 때 그 아름다운 자연에 묻혀 마냥 뒹굴었고, 감꽃이 노랗게 피었단 떨어지면 온 산이 노랑 물이 든다. 뛰어 다니며 감꽃을 누가 많이 줍나 내기도 하고 주렁주렁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가슴까지 늘어뜨리고 끈을 만들어 머리에 장식하고, 사시사철 산을 오르내리며 지칠 줄 모르고 노래 부르고, 동요에서 부터 가곡 춘향아리아까지 오빠를 따라 인숙이, 중한이. 삼경이 누구 하나가 노래를 시작만 하면 저절로 합창이 되어 온 산에 메아리 칠 때 마음은 한없이 부풀고 하늘을 향하면 훨훨 날을 듯 그때는 참 행복했었다. 누가 우리 보다 더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외치고 싶다.

>>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림. 부모님은 많은 일들로 힘드셨을지 모르나 이렇게 당신들의 축복인 여섯 남매는 산으로 들로 다니며 꽃목거리 목에 두르고 꽃 핀 머리에 꽂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치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가장 따뜻했던 날들을 읽는 듯한 느낌. Little Tree가 떠올랐다.

그 순진한 눈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쫓아다니면 지냈던 어린 시절의 산골 생활. 이 부분은 마치 그 책을 읽는 듯 내 영혼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P173 인숙이도 언제나 공부는 반에서 제일 잘했다. 모든 것이 자신이 없는 나에 비해서 동생이 너무 잘하니 샘도 났지만 그래도 남에게만은 자랑 거리였었다.

>> 아름다운 큰 언니..


P176 밤이면 공습경보로 불도 못키는 깜깜한데서 어머니는 소반에 정한수 떠놓고 밤마다 그 예의 일곱 신에게 비셨다. 번번이 물을 갈아 대야 하기 때문에 나는 꼭 엄마 뒤를 따라 다니며 수발해야 했는데 북두칠성을 향해 앉으시면 어쩌면 그렇게 하실 말씀이 많은지 뒤에 서 있는 나는 지루해서 깜빡 졸기도 했었다. 어머니의 그 지극정성이 하늘 끝까지 가 닿았는지 아버지도 오빠도 다 무사 했었고 아무 낙오 없이 우리 육남매는 모두 다 바르고 착하게 잘 자랐다.

>> 넘 귀여운 언니. 싫다고 들어가서 자겠다고 땡깡을 부릴 수도 있었을건데 북두칠성만 보면 할 말이 많으신 어머님 뒤에서 그렇게 서서 깜빡 졸기도 하시면서도 끝까지 엄마 뒤에 서계시던 언니를 생각하면, 그저 감동일 따름이다.

어머님의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사랑. 나는 흉내도 내지 못할 따름이다.


P202 엄마의 표현으로 어리석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들을 때마다 착하다는 뜻으로 들려서 싫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젠가 나의 삶을 빗대어 말씀하시며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 똑같이 어리석은 신랑을 만나 더 어리석은 아들들을 낳았다고 하셨다. 새삼스럽게 그 어리석음의 소중함이 느껴졌다.

>> 어머님의 사랑의 표현이시란.. 어머님의 어리석다는 표현에는 너무 착해서 이 험한 세상 어찌 살아갈꼬..하는 걱정스러움도 담겨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착한 어리석음에도 그렇게 훌륭한 모습으로 어머니 곁에 계셔주었으니 어머니는 얼마나 행복하셨을까..기특하셨을까..


P215 만사를 욕심 없이 편한 것이 행복이니라.

부디 화목하게 누구라도 돕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자연히 복이 오느니라.

남에게 나쁜 소리 듣고도 화내지 않는 사람이

정말 훌륭한 사람이란다.

너는 온갖 지혜와 인격을 고루 갖추었으니 무엇을 염려하며

못 믿어울 것이 있으랴마는

멀고 먼 몇 만 리 타향에 던져 둔 어미 마음 오매불망이라.

그저 마음이 알지근 그리울 뿐.

다만 기대하는바

너희들 건강과 걱정 없이 살기를 바라고 소원할 뿐이다.

>> 마치 잠언 말씀을 읽는 듯했다. 삶의 지혜는 배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성품에서 마치 어머니 뱃속에서 부터 알고 나오는 것 같다. 이렇게 지혜로운 말씀으로 자제분들의 자존감을 훌륭하게 키워주신 어머니. 그저 한 다리 건너 어머님을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랑스럽고 행복한 마음 나만의 느낌은 아니겠지..


P217 어미는 너무 건강해서 잘 돌아다니나 속상한다.

젊은 것들은 건강치 못하고 늙은 것이 왜 돌아다니나

괴롭고 귀찮고 만사가 지리 지루하고 자식들 보기 염치없다.

허다 할 말 필요 없으니 이만 그친다.

낮에는 분주하고 밤에 쓰노라 눈도 어둡고

글씨도 고약 못 알아 볼 듯한데

너는 알 수 있을까 그대로 보난다.

>> 언제나 자식먼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당신 외의 다른 분을 먼저 생각하시고 챙기시는 어머니. 자신이 행여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늘 조심스러우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자식들은 어찌 그리 깊이 헤아려 주셨는지.. 어머님과 자식들간의 이세상에서의 인연은 어머님에게도 6남매에게도 서로간에 축복이고 선물였던 듯..


P221 여기에 계신 시어른을 비롯한 모든 시댁식구들 다 안녕하시고 잘 지냅니다. 그 중에도 송자 고모는 처음 왔던 때로 치면 저희보다 5년 쯤 먼저 온 셈인데 꼭 저흐리를 위해 먼저 와서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 네 식구의 일을 완전히 자기의 일로 생각하고 샅샅이 보살피며 도와주니 과거의 여러 해를 고생하여 함께 지낸 정분이 이렇게 큰 것인가 새삼 느끼게 됩니다.

>> 작은 언니의 시누도 그렇게 인품이 고우신 듯. 이민 생활에서는 친구던 친지던 데려오면 원수가 된다는 말이 돈다. 그만큼 이민 초청을 하여 데려온 후 서로 사이가 안 좋아 벌어지고 나중엔 남만 못한 원수가 되어진다는 것. 그것은 말로만이 아닌 우리도 주위에서 많이 본 케이스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독특한 문화 속의 이민 생활을 같이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서로 마음 하나되어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는 작은 언니와 송자 고모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답기만 하다.


P222 할머니도, 시누이들도, 동서도, 삼촌도 모두 저를 좋아하고 있으니 저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인가 보아요. “가거든 모두에게 잘하고 화목하게 지내라어머님께서 늘 당부하셨지요. 저에게 아주 잘 해주는 상대방에게 저도 잘 대하기는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쉬운 일이더군요. 어머님. 그 점에 있어서는 아무 염려 말으셔요.

>> 역시 유유상종. 끼리끼리. 같은 빛깔을 가진 분들이 함께 보여 그렇게 아름다운 무지개 색을 내며 지내시는 모습.. 보기 쉽지 않은 집안 풍경이다..


P226 너의 문장의 편지 번번이 세세한 사연 궁겁지 않게

살뜰히 자미와 기쁨을 담아

어미의 쓸쓸한 마음을 한없이 여광되게 하니

못난 어미에게 과분한 자식이라 염치없지마는

엄연히 내가 나은 것은 사실이니

내게도 이런 자식이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 늘 당신을 낮추시고 자식을 높이시며 겸손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시는 어머니. 어찌 이런 어머니 밑에 훌륭한 자식으로 성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읽을수록 감동이며 고개가 숙여진다.


P227 안토니 편지 혜자한테 온 것 집집이 돌려보고 칭찬이 야단야단

주옥같은 글씨 사연 너무너무 잘 하였더라.

너의 모자 편지 문장으로 유명하니

서울서는 집집이 가지고 다니며 돌려 본다.

>> 어떻게 가족이 이렇게 하나될 수 있을까..?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누구 하나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닌게 가족 분위기. 이렇듯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먼저 배려하며 기꺼이 함께 하는 모습. 내겐 영화 속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P227 글씨 사연이 너무 고약하나 너는 알아볼 지 그대로 부친다.

>> 항상 부끄러워하시는 어머님. 넘 귀여우시다..^^ (건방진 표현.. 죄송합니다..)


P232 사돈이 나를 미국에 오라 하는 모양이나 말도 안된다.

내가 나이 칠십만 되어도 가서 구경하고 올 수 있겠으나

팔십 늙은이 무엇으로 그곳에서 죽을 것도 아닌데

자식들 여기 두고 쓸데없는 돈을 쓰고 미국에 미쳤나

본대 그런 말 하지마라.

나는 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고 이 집에서 죽으리라.

너는 무엇이라도 너무 할라고 밤을 새우고 지극정성

몸이 남아나지 못

애성도 귀찮으니 이제는 조금 편히 살아라.

못난 어미를 닮아 너무 부지런 떠는 것도

귀찬하고 해롭고 실속 없다.

사돈께서도 편안하시며 이집 저집 다니시며

자식을 돕는 것이 얼마나 자미며 행복이랴.

>> 사돈 어른을 배려하시는 모습. 당신이 가심으로 작은 언니가 온 정성으로 당신을 모시려고 애쓰실 것 까지 미리 다 아시며 배려하시는 어머님.. 어찌 작은 언니가 보고싶지 않으시고 그립지 않으셨을까..? 항상 이렇듯 당신은 늘 뒷전에 두신 어머니셨다.


P233 이 서방 탄신일을 기념 잊지 않은 표시나 될까

양훈 어미를 시켜 마른 반찬 명생 일가르라 하였더니

되도 않은 것 포장하는데 가서 시키니 부피만 크단하게 만들어

양훈 어미가 부쳤다하나 도로 부끄럽고 우습다.

>> 읽다가 살포시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사위 생일 챙기시느라 큰 따님게 마른 반찬 준비시키는 어머님. 그런데 포장이 너무 커서 행여 내용은 없고 포장만 거창하게 보이는 것 같아 걱정하시는 어머님. 그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져 살포시 미소가 떠올랐다. 지극하신 사위사랑.


P234 혜자가 부쳐준 증조 할아버님 문집은 정말 얼마나 고마웠는지 종일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으며 어려운 가운데 이 큰일 해 내신 무섬아제의 측량할 수 업는 숨은 노구에 깊이 감사했습니다.

>> 가문의 전통이 귀히 여기며 그 전통을 따른다는 것이 이렇게 자손들에게 훌륭한 교육인줄은 내 미처 알지 못했다. 전통을 아끼며 보호사고 자손 대대로 물려주시며 선조들의 훌륭함을 배우며 그것을 물려주시려는 모습. 이 또한 내게는 자주 느껴보지 못하는 감동이었다.


P234 마침 안토니도 와 있던 중이라 온 가족들이 번갈아 읽으며 보는 이들마다 감탄하고 부러워하니 저는 말 할 수 없는 자랑스러움을 느끼며 설명을 덧붙이느라고 바빴지요. 멀리 있는 나를 잊지 않고 내 몫까지 부담하고 엄청난 우편요금을 물고 붙여준 혜자. 그 사랑 뜨거움을 마음으로만 느낄 뿐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어머니의 편지. 아마도 이런 모습은 어릴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노래부르며 자라던 그 가풍이 이렇게 이어지는 것 같다.


P235 남들이 무어래도 장모님께서 늘 알아주시던 이 서방의 한결같은 마음은 미국에 와서야 정말 내가 시집을 오기는 잘 왔다는 실감을 나게 합니다.

>> 누가 뭐래도 장모님은 알아주시는 사위님. 이보다 더 큰 장모님의 사랑은 어딨으며, 이보다 더 큰 사위의 행복은 어딨겠나.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P243~246 서울에서 오라버니가 작은 언니께 쓰신 편지를 읽고..

>> 책을 내시려는 계획이 엊그제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오고 있었던 이야기임에 놀라웠다. 자식들의 어머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이토록 깊을 수 있을까.........


P250 무엇이라도 침착하게 너그럽게 태연한 자세로

만사를 서둘지 말고 평화롭게 지나면 건강도 마음에 있느니...

>> 어머님의 가르침. 마치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같았다..


P254 살아 갈수록 그 진면목을 보여주는 이 서방의 참 사람 됨. “김인숙 같이 착하고 좋은 여자 이 세상 오직 하나라며 진가를 서로 알아보고 높이 평가하며 세상 풍파 다 겪으며 20여 년을 더 살았어도 처음 만났던 젊었던 그때처럼 가슴 설레며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 때로는 신기하게 느껴질 만큼 저는 세상에서 제일 복이 많은 여자이고, 이 서방은 세상에서 제일 복 많은 여자하고 사는 남자이지요. 그 사람 옆에 붙어 있는 저는 매일매일 일하는 것이 감사하고 즐겁기만 합니다.

>> 부부가 살다보면 불편한 일도 생기고 갈등도 생겨 때로는 혼자 있고 싶고 내가 왜 결혼을 해서 이고생을 하는가..? 하고 생각되어질때가 어디 한 두번이던가..? 그런에 작은 언니의 결혼 생활은 참으로 이상적인 부부 모습이었다. 그렇게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니 그 처음의 사랑 더 깊어지고 처음 만났을때의 설레임을 지금도 느끼신다는 말씀에 괜히 내 가슴이 두근거려졌다. 두 분의 영세명처럼 천생연분이신 두 분. 오래오래 주님의 축복 아래 백년회로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P267 너가 미국으로 오라오라 하나

가서 거기 사뭇 살 것 같으면 하지마는

자식들 여기 있으니 갔다가 와야 할 것을

무엇트로 오며가며 돈쓰고

너를 미국까지 따라 가서 못 살게 하고 싶지 않고

미국이 궁겁지도 않으니 오라오라 하지마라.

>> 그렇게 사랑하신 둘째 언니 어찌 그립고 궁겁지 아니하실까. 하지만 행여 당신 둘째 딸 어머님 모시느라 돈 많이 쓰고 힘들게 하실까 왜려 역정내시는 모습. 어머님의 깊은 배려가 담긴 사랑의 표현. 그마음 모르실 작은 언니가 아니셨으니. 결국 미국으로 모셔가고..


P274 할 말이 한없이 많으나 붓대 들면 다 잊어 불고

무어라 적을지 고약하다.

내가 편지 못쓰니 내 편지 바라지마라.

>> 어머님이 따님께 편지 하실때마다 후렴구처럼 따라붙는 말씀. 이럴때는 어머님이 애기같아 보이고 얼마나 귀여우신지. 이 구절을 읽을때마다 내 입가엔 미소가 귀에 걸린다..^^


P276 이번에 펜을 들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조그마한 선물을 전하기 위해서야. 얼마 전 여기 FM 방송의 저녁 <정다운 우리 가곡?시간에 전에 듣지 못하던 신곡으로서 아주 좋은 노래가 있어 듣는 순간 아! 좋다! 배워야 겠다! 그리고 미국에 녹음해 보낸다면 좋은 선물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이제 그 우리 가곡 두 곡을 녹음하고 악보도 구하여 함께 보낸다.

>> 넘 멋진 오라버니. ^^ 학생시절 초롱불 켜놓고 새색시 아내를 공부시키시던 그때부터계속 나를 감동시키시는 큰 오라버니. ^^


P277 악보를 구하여 편지를 쓰기도 전에 지난 주 손실이, 혜자, 삼경이를 불러 이 테이프를 미국에 보내겠다고 미리 자랑까지 하고 신곡 배우기 모임을 가졌어. 그랬더니 삼경이는 그 두 곡 중 [내 마음의 강물]은 이미 알고 있고 벌써부터 우리에게 가르칠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손실이는 며칠 전 그 곡을 TV에서 들었다며 곡이 좋아 그날 신곡으로 내 놓을 양으로 가사를 적어 왔더라. 그런데 김동진씨 곡의 [소리]는 아무도 모르는 그야말로 신곡이고 두 곡다 좋은 노래라며 한참 배우고 갔다.

>> 하하하하~!! ^^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지. 나이 지긋하신 형제자매 함께 보여 신곡 노래 배우시는 모습. 서로 짠~!! 하고 싶으셨을 신곡. 이미 서로들 알고 있는 곡이어서 얼마나 웃으셨을까..?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봄날 같은 분위기...


P278 [음악에]는 정말 곡도 좋으려니와 음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훌륭한 해답일 것이다. 나는 이 노래를 좋아하고 자주 콧노래로 부르고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더 넓고 더 크고 더 소중한 그 무엇인 것 같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아름다운 음악은 나의 가장 가까우 ㄴ친구 이상의 가장 사랑하는 애인과도 같은 아니 그 이상의 나의 인생의 아름다운 반려자라고 해야 할 거야.

그 음악을 통해서 때로는 지난날의 그리운 추억을 회상하며 때로는 외로움을 달래고 위안을 받으며 또 때로는 한없는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을 찾고 그리고 때로는 무한한 감동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음악은 나에게 허다한 잡념과 지나친 욕심 등을 떨쳐 없애고 언제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정화시켜 항상 올바른 마음 가짐을 간직하도록 노력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마음의 양식과도 같다고 해야 할 거야. 음악과 함게하는 나의 마음은 비록 어려운 일에 부닥치더라도 이에 굴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며 해가 거듭됨에 따라 나이를 먹을지언정 마음만은 나이를 잊고 항상 젊고 밝고 건강하단다.

>> 음악이 큰 오라버니에게 차지하는 그 의미와 공간은 너무나도 깊고 컸고, 또한 음악이 나에게 주는 그 의미 또한 흡사하여 초서에 옮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큰 오라버니는 클래식과 가곡을 좋아하시고, 나는 팝과 샹송 깐소네를 선호하지만, 음악 쟝르가 다른 것이 그 의미를 퇴색시키는 아닐 것.

큰 오라버니의 음악에 대한 사랑 고백을 읽으며, 마치 괴테가 사랑하던 제자이자 친구인 요한 페터 에커만에게 자신이 발견한 색채론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해내며 설명하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얼마나 멋있고 낭만적이며 아름다움을 즐기시는 큰 오라버니시인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혹시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 팬임을 자청하며 큰 오라버니 퍁클럽이 생기는건 아닌지.. ^^


P295 세상 사람들이 다 고생이라고 말하는 이 일을 하면서 남이 보기에는 고생만 죽도록 하는 것 같이 보여도 (실지로 우리 고모들이 우리를 그렇게 ㅂ고 있어요.) 당사자들이 하기에 따라서는 내면적인 기쁨이고 즐거움의 기간일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고생일 뿐이겠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가치가 빛날 수도 있다는 것 이런 얘기들을 이 서방과 같이 젊은 연인들 끼리처럼 주고받고 합니다.

아이들은 저희들 몫의 일로 너무 바쁘기 때문에 여름 방학이 올때까지는 바빠도 아이들의 도움을 바랄 수가 없어요. 매주 일요일만 만사 제쳐놓고 저희 형제 아침 미사를 마치고 가게로 오면 오리 두 사람 드디어 해방이 되어 신나게 7년만의 외출을 합니다. 외출이라야 가게에 사람이 없으니 이 서방이 평일 중에 집에 들어가는 일은 생각도 못하니까 일요일 몇 시간이라고 그 사람한테는 꼭 집에 무엇이던지 손댈 일이 기다리고 있어서 공구점에 들려 재료를 사 가지고 서둘러 와서는 몇 시간 모슨 일인지 밖에서 열중하다가 씻고 7 30분 저녁 미사에 참여하기가 항상 바빠요. 성당에서 돌아오면 가게 문을 닫고 돌아온 아이들과 모처럼의 단란한 일요일 저녁시간을 갖게 됩니다. 매주 어김없이 이렇게 지내다 보니 가게 손님들도 일요일의 젊은 주인들을 아주 좋아하고 있어요. 자주 손님들로부터 너희 아들들 좋더라라는 칭찬의 말을 듣습니다.

>> ‘이민 생활이라는 공통된 환경안에 있기에 작은 언니의 일상이 눈에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깊은 공감이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4가족이 아름다운 그림으로 살 수 있는지. 특히 두 아드님은 일요일 친구들과 놀러가고 싶었을건데, 그렇게 한결같이 부모님 곁에 부모님을 도우셨으니 두 아드님 중 한 분은 훌륭한 신부님이 되셨고, 막내 아드님은 또한 마음도 영혼도 아름다운 아내를 맞아 눈에 넣어도 안아플 딸래미를 낳고 장남역할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복된 가정이다. 하느님 보시기에 얼마나 좋으실까..


P297당신 장모님 용돈 궁한 분 아니다. 그 분이 기다리는 것은 나의 편지이지 당신의 수표가 아니다. 모았다가 한꺼번에 드리면 되니 걱정하지 말아요.”했어요.

>> 그 어머니의 그 따님, 그리고 그 사위님이시다. 그렇게 한결같이 서로를 아끼시고 배려하시는 마음...


P298 너의 문장의 편지 만지장서를 받으니 반기운지 고마운지

목석어미 마음도 감동의 눈물이 앞을 가린다.

>> 편지 기다리지도 않으니 쓰지도 말고 어미 걱정도 말라시던 어머니. 어머니께서 그토록 기다렸던 것은 바로 작은 언니의 편지 아니셨던가..? 눈물이 났다.


 P300 혜자는 일생 바빠 동서팔방 돈벌이 고생이 극심하나

늙은 어미 걱정 할까 간혹 만나면 활발한 기색

세상 자미를 혼자 가진 듯

용돈을 퍽퍽주고 좋은 말로 웃고 가지마는

어미 마음은 언제나 말없이 혼자 가슴 아플 뿐이다.

저의 성격을 따라 앞날이 활짝 피일 날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 마음도 영혼도 아름다운 우리 그레이스님.


P301 이 서방이 애모습고 미안하지 않난

주야 노력하여 알뜰이 아끼고 소중한 돈을

너를 위하여는 아끼지 않으니

내 마음 감격하여 그리운 너가 오려는 것도 말리고 싶다.

오라비 회갑이 멀지 않으니 그때는 와야 할 것 아닌가.

무고 할 때는 미루어라

내가 무고이 아무 일 없이 다녀오느라 이 서방을 애를 먹이고

돈을 스게 한 것이 그렇게 후회 되더라.

>> 어찌 이런 장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누가 뭐래도 한결같이 믿어주신 장모님.. 이런 장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계시는 사위님은 얼마나 든든한 느낌이셨을까..?


P313 나도 외할머니처럼 강한 엄마가 되고 싶다. 멀리 있어도 너희들에게 힘이 되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부딪히게 되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을 때에, 본의 아니게 남과 다투게 될 때, 나도 모르게 화가 날 때 그 어려움을 어떤 방법이든 자기 나름대로 쉽게 이겨내고 자기를 다스리는 기술을 훈련으로 터득해야 된다. 엄마의 경우를 소개하면 이럴 때 힘이 되어 주시는 분이 다른 아무도 아니고 멀리 계신 외할머니라낟. 잠시 정신을 차리고 내가 누구의 딸인데?”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금방 쉽게 나의 본래의 자세를 회복하게 되고 방금 참기 어려웠고 나를 괴롭혔던 일들은 어느 사이 아무것도 아닌 시시한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아.

>> ‘내가 누구의 딸인데..?’ 이런 강한 자존심과 자존감을 심어 주신 어머님. 그 분의 따님은 또 그분께서 당신께 가르침을 주셨듯이 당신의 아드님들에게 같은 가르침을 주신다. 내가 누구의 딸인데.. 이처럼 강한 한 마디가 있을까..? 이 한 마디 표현으로 힘을 얻고 당신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시게 하는 강력한 주문. 작은 언니의 아드님들은 내가 누구의 아들인데...’하며 또 다시 주문을 이어가겠지... ‘마크톱


 P316 양훈 어미 안양으로 이사할 계획아라

이 집을 세놓고 안양의 집을 세를 얻은 듯

손서방 출근 길 너무 멀고 지영이 학교도 그 쪽이라

부녀 편리를 위하여 그리 한 듯 다행이나

멀어진 것 같아 섭섭고

혜자는 비둘기 같이 형제 다니며 형을 의지하다가

섭섭고 외로워 울고불고 야단이다.

 

>> 큰 언니 이사가신다고 울고불고 하시는 그레이스님.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 그레이스님 죄송해요.. 그레이스님은 슬퍼 우시는데 저는 어쩌자고 웃음이.. 하하하하~ ^^


P319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움켜쥐고 싶어 하는 마음의 평화 행복 같은 것. 우리가 삶에서 애지중지하는 가장 소중한 것들은 얼마나 부쉬 지고 깨지기 쉬운 연약하고 여린 것인가. 이 세상은 얼마나 어디서나 위험 구렁텅이이고 겁나는 세상인가를 그날 잠 못 이루는 밤에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P320 엄마 다치신 뒤에 형님이 많이 애 썼지요? 참 사랑으로 엄마를 편히 보살펴 드리는 형님이 그렇게 자랑스러웠노라고 혜자가 어느 날 전화로 들려주었습니다.

그 오빠에 그 형님이니까 저도 다 알고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보답을 엄마가 못 갚으셔도 이 세상에서는 우리 행제와 주변에게 감사와 칭송을 받겠지만 형님은 우리 중에 가장 잘 믿는 분이니까 먼 훗날 하느님 앞에 설 때에 그 모든 일이 하나하나 선행의 공적이되어 형님의 머리위에 빛나는 영광이 될 것입니다.

>> 만약 이 편지가 책으로 되어 나오지 않았다면 어쩌면 새 형님께서는 고모들이 그리 고마워하시는 줄 이리 깊이 알지는 못하쎴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워낙 시누 올케 할 것 없이 우애가 좋으시니 물론 느낌으로 느끼셨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로 표현되어 나오는 것, 그것도 직접 본인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으시니 새 형님 마음이 얼마나 흐뭇하셨을까 싶다. 그렇게 한 평생을 지극한 정성과 사랑과 존경으로 시어머님을 모셨던 새형님. 당신이라고 왜 자유롭고 싶지 않으셨겠으며. 당신이라고 왜 알콩달콩 두부부 자기 가족끼리만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 없으셨을까..? 때때로 그런 바램 느끼셨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도 대나무처럼 곧곧하신 큰 오라버니의 성품 때문에 감히 상상도 못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효부 세상에 흔치 않은 것 우리 모두 잘 아는 일. 우리 그레이스님께서도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실때까지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모셨으니. 그 올케에 그 시누 아닌가.. 참으로 신기하지 않나..? 어떻게 한 가족 안에 이런 분들이 모두 모여 계시는지...


P343 할 말이 많더니 붓대드니 다 잊고

무엇을 적을지 내 편지 이 모양이니

알아 보도 못하고 할 말도 다 못하니 받아 무엇 하리.

편지 바라지도 마라. (...)

>> 넘 귀여우신 어머님..^^


P343 상욱 어미야, 이 편지 벌써 써 두었던 것 혜자 보거든 부치라 준다는 것이 번번이 잊어불고 이제야 보내나 보잘 것 없는 편지 마음 내키지 않으니 부치고잡지 않다. 내 편지 일생 이러하다 마음으로만 한없는 심중을 누가 알며 못나고 몹신 어미 이제 잊어두어라.

>> 이렇게 당신을 탓하시는 모습. 그 깊은 곳에는 자식들에 대한 하염없는 사랑이 자리함이니 그 모습 감동이고 또 감동.. 이렇게 걱정하시고 당신의 따르지 못한 기억력을 속상해 하시며 부치고 싶지 않으시다면서 당신을 탓하시는 모습.. 내게는 너무 귀여우신 모습이었다.. (버릇없는 표현 죄송합니다..)


P348 생각해 보면 너의 새형은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어머님을 잘 받을어 드리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그 이상 고마울 데가 없다.

>> 어머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큰 오라버니께서는 그런 아내가 얼마나 사랑스러우시며 또 고마우셨을까..? 참으로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모습은 요즘 부부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P354 어렵사리 오빠에게 말을 꺼냈을 때 아무 말씀 않으시고 얼굴이 돌처럼 굳어지던 오빠의 표정... 저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그렇게 굳은 표정을 본 적이 없습니다. 맏이로서 엄마와 따로 산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참 효자인 오빠는 동생들이 그런 발상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비통할 만큼 상심하셨고, 아들의 고통을 잠시도 보고 있을 수 없는 엄마는 당장 언제 그런 일을 꿈에라도 바라기나 했었느냐는 듯이 모든 것을 완전히 접으시고 오빠 내외와 살아오시며 참 효자효부의 정성스런 보살핌을 받으셨으니, 우리 엄마는 얼마나 복이 많은 분인가.

>> 큰오빠의 효성이 얼마나 극진하셨는지는 이 부분에서 너무나 잘 나타난다. ‘모든이는 아니지만 많은이들이 이런 경우가 오면 좋아라~하고 받아들이셨을 것인데, 그렇게 굳어진 표정으로 어머님까지 단방에 포기하실 만큼 당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셨으니. 오빠가 학생때 일찍 결혼하신 것은 단순히 어른들의 뜻을 마지못해 따랐음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의 결정이었고 또 그 결정을 충실히 이행하심이 명확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또한 그것은 맏아들이라는 의무나 책임에서가 아닌, 진정 당신의 어머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었음을... 이런 오빠와 새형님을 존경하고 따르지 않을 동생들이 과연 어디 있단 말인가..


P358 성당자체가 주는 엄숙함, 쌀쌀한 날씨가 더해 장례미사는 탁탁한 분위기에서 시작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고인의 손자로서 안토니 신부는 그의 눈물은 태평양에 뿌리고 왔는지 오직 온화하고 수양을 깊이 쌓은 성직자의 분위기를 풍겨 성당 내를 따뜻하게 했다. (...)

그 청아한 목소리가 우선 장내를 압도했다. 설악산 수림동 계곡의 옥류처럼, 어떤 땐 봄날 신록의 거울이 되는 듯, 어떤 구절엔 낙엽을 얹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흐르는 투명한 물처럼 음악처럼 시처럼 철학 강의처럼 강론이 계속됐다. 꾸밈도 오염됨도 없는 언어.

>> 김 헌휘 선생님의 글을 보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우리 그레이스님을 사랑에 빠지게 하셨던 선생님의 글솜씨. 감히 내가 잘쓰신다 못쓰신다 어찌 이야기 하겠는가. 하지만 선생님의 너무나도 현란한 표현에 그만 숨이 훅~했다. 어떻게 그런 표현이 이리 자연스럽게 그려지는지. “그의 눈물은 태평양에 뿌리고 왔는지...” “ 어떤 구절엔 낙엽을 얹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흐르는 투명한 물처럼.”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표현을 그려낼 수 있는지.. 넘 부러웠다..

 

그야말로 꾸밈도 오염됨도 없는 투명한 언어. 선생님께서는 안토니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그리 표현하셨지만. 내게는 선생님의 글이 그렇게 느껴졌다. 우리 그레이스님을 그렇게 사랑에 빠지게 하셨던 그 편지를 마치 컨닝하여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P359 그러나 안토니 신부의 자유처럼 망자도 생자도 그 자유로움속에서 즐겁게 만날 수 있으리라.

>> 아멘~!!


P367 장모님께선 어느 시인의 기도문처럼 사셨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행하셨습니다. 고통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셨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는 현명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가치있는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P370 우리가 자랄 때에도 그러셨고 손자들을 기르시면서도 엄마는 언제나 스스로는 희생하시며 참으셨고 잘못된 것이 이쓰면 끝까지 엄마탓으로 돌리시고 사랑으로 덮어주셨습니다.저희 여러 남매가 어떻게 다 좋기만 했겠습니까? 잘못하는 일도 많고 실수도 많았지만 엄마의 치마폭에 다 가려지고 덮어져 우린 무사히 숨을 수 있었고 속으로 반성하며 차츰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 졌을것입니다.

>> 이런 분이 바로 어머님이셨다. 과연 나는 어떤 엄마인가..? 잠시 멈춰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의 잘못을 나는 사랑으로 덮어주었는지. 혹시 덮어진 것마저 들춰내며 닥달하지는 않았는지. 잘못된 것은 내탓으로 돌리기는 커녕, 애들 때문이라며 애들을 코너로 몰아부치지는 않았는지.. 나는 엄마같은 엄마가 아닌 이기적인 엄마는 아녔는지.. 늘 귀찮은 건 싫어하고, 애들이 그냥 혼자서 알아서 커줬음 하는 엄마아닌가..? 그래서 반성하고 있는 요즘, 그래도 오늘은 엄마 노릇한다고 리예와 친구를 15세 성인식 한다고 데려다주고 왔다. 다른 엄마들 당연히 하는 것을 나는 특별한것 해주는 양 생색이 이리도 크다..히구..-_-;;


P371 앞으로 우리가 저지를 실수 잘못들을 누구의 치마폭으로 덮어질 수 있을까요? 이렇게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도 허점투성이이고 실수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엄마 안 계신 지금 가려줄 치마폭도 이젠 더 이상 없고 덮어줄 우산도 없이 그냥 비 쏟아지는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느낌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엄마! 이제는 실수를 해도 잘못을 저질러도 우리 스스로가 책임지겠습니다. 아니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들 손자들도 엄마가 우리를 키우신 것처럼 키워나가겠습니다. 엄마처럼 꿋꿋하게 살면서 엄마가 하신 것처럼, 자식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손자들이 실수를 한다면 치마폭을 다 벌려 덮어주겠습니다. 엄마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엄마에게 배운 대로 참고 희생하고 덮어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다 자랑스러운 엄마의 자손들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자식들을 키울 것이며 엄마 손으로 하나하나 다 받아 내신 손자들의 가정 가정마다 엄마의 기운이 뻗쳐서 대대손손 굳세고 올곧고 정직하고 강한 의지의 인간으로 키워나갈 것입니다.

>> 저도 그러겠습니다. 그렇게 우리 애리와 리예에게 하겠습니다. 실수는 치마폭으로 덮어주고 잘못은 내 탓으로 돌리며 그런 모습 속에 아이들 사랑과 용서를 배우며 또한 자신들에게 닥쳐오는 힘든 고난들을 꿋꿋하게 용기를 가지고 헤쳐나가며 그리하여 꿈과 비젼이 있는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워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사회에 공헌하는 아이들로 키워내겠습니다.

어머님께서 평생 삶으로 보여주신 겸손과 사랑을 가슴에 담고 삶 속에서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P375 젊어선느 동생들이 줄줄이 어려운 살림에 그 모든 고난을 엄마와 함께 지셨고, 시집 간 딸들이라고 어쩌다 찾아 와서는 용돈 몇 푼 드리며 혼자 엄마를 위하는 양 하는 말과 행동들이 하루 스물 네 시간을 엄마와 마주 보며 신경전을 하는 형님에게 혹시 상처를 드린 적은 없었는지 반성합니다. 우리 형님에게 모든 것 이겨내는 인내와 너그러움과 근본적으로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고 확신 합니다.

>> 이렇게 마음 깊이 살피시고 이해하시는 시누이들이기에 형님은 그나마 어려운 살림 속에 위로되고 이런저런 속상한 어려움 모두 흘러보내시고 사랑으로 어머님을 모실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P400 아지매는 새벽마다 청량리시장에 가서 채소장사가 버린 배추 씨레기를 주워 그중 깨끗한 것을 골라 국거리 반찬으로 쓰고 나머지는 닭모이로... 불면 쓰러질 것 같은 가냘픈 몸으로 시장바닥에서 주은 씨레기 보따리를 허리가 휘어지게 이고 오시던 모습..

>> 눈물이 앞을 가려 읽어내려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 조그마한 몸에 얹혀진 삶의 무게란. ‘어머니시기에 자식들을 위해 그 험한 일도 마다지 않으셨던 어머니. 그런 고생 속에 그토록 6남매들을 하나같이 훌륭하게 키우셨는데, 그러셨음에도 어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평생을 당신이 자식들에게 짐이신양 몹신어미라며 당신을 낮추시며 그리 미안해하며 보내셨을까..? 싸한 아픔.. 가슴이 먹먹해져온다.


P403 물질은 어려웠지만 즐거운 웃음소리 노래 소리가 메아리쳐 울려퍼지던 집.. 함께 어울려 노래 부르며 나의 외로움을 달랬던 종암동 시절.. 살아가면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그리워 질 때도 많았다.


P403 종암동 뒤 산자락에 핀 가냘픈 한송이 코스모스같은 몸매에 모진 풍상에 씻기고 할퀴어도 변함없이 꿈쩍도 않는 바위같이 의연하게 육남매의 위대한 엄마의 자리를 지키시던 강인한 분이셨다. 몸을 깎아 자식에게 희생을 해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끝나는 한 많은 인생도 많은데 아지매는 그렇게 키운 육남매의 남다른 효성을 다 받아 누리고 장수의 축복도 누리다가 천국에 가신 ㄱ서을 생각하면 참 복 많은 어른이란 생각이 든다.

>> 구구절절 공감공감~!!


P403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아지매의 삶은 이 질녀의 가슴에 존경심과 연민의 정이한 겨울의 흰 눈이 되어 쌓여 나의 가슴을 시리고 아프게 했었다.

>> 가까이 하지도 않은 나조차도 그리 느껴지는데 질녀님께서는 그 느낌 오죽 깊으셨을까.......


P404 지금은 아무리 가까운 친척도 부담을 생각하고 폐를 끼칠까 그렇게 무시로 드나들 수 없다. 우리 엄마들 세대가 아니고는 찾아 볼 수 없도록 세상이 변해 버렸다. 세상이 바뀌고 문화가 바귀고 인정도 바뀌었지만 그래도 우리들 세대까지는 끈끈한 정과 그리움의 불씨가 남아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 사랑을 품고 간다.

>> 읽으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미국에 살때, 엄마는 우리 집에 다니러 오시기 전에 꼭 전화를 하셨더랬다. “지금 가도 괘않나? 명서방 피곤하지 않나~?” 서울로 시집오신지 몇십년이 지났건만 한결 같은 경상도 사투리.. 딸네 집도 물어보고 오셔야 했던 엄마 마음 한 켠은 얼마나 휑하셨을까..? 난 지금까지도 그러셨을 엄마의 마음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미안해 엄마............


P422 좌우 전후 살펴보니 풍류호걸 우리 낭군

모인 중에 으뜸이다

당당한 그 기상이 사람 중 뛰쳐났고

녹발홍안 나의 태도 교태가 일층나네

>> 낭군님에 대한 사랑을 이리 당당하게 표현하시는 어머님의 시고모님의 자태가 얼마나 당당하게 보이시면서 신세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왠지 자신 주장 뚜렷하시고 강한 개성의 참 멋쟁이셨을 것 같은 느낌..^^


P425 어머님의 아버님 이병철의 화전가를 읽고..

>> 피는 못속인다 했나..? 그 아버님의 그 따님.. 딸내들의 오랜만의 친정나들이. 화전 굽는 모습을 보고 흐뭇함이 들으셨던 마음에 지으신 화전가. 얼마나 자상하시고 로맨틱한 아버님이셨는지.. 다시 한번 가정 교육이 이리도 중요하고 가풍이 이리도 중요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P448 총무인 무실 형님

글자나 한답시고 엄전만 빼고 있어

야릇하기 그지없네

>> 하하하하~ 살짝 시니컬한 표현~ 넘 재밌어서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하하~ ^^


P459~P473 운암 김연의 정암 조광조의 신원을 간청하는 상소를 읽고..

부끄럽게도 한국 역사를 잘 모르는 나이기에 읽으면서 어떻게 스토리가 전개되는지 무척 궁금해지는 마음으로 마치 역사소설을 읽는 듯한 그런 짜릿함 마저 느껴졌다. 이 상소를 올리기에는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하셨을지. 목숨을 걸고 임금님께 드리는 상소.

조광조와 임금님과의 초기의 관계와 후에 틀어진 관계 속에 누구 신뢰를 한 것이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또 누구냐며 조목조목 짚어가며 임금임의 잘못된 행동을 드러내시는 그 용기에 충직함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미 우리는 많은 드라마 속에서 역사책 속에서 많이 듣고 보고해 왔지만, 그것은 언제나 역사 책 속의 이야기요 드라마 속의 스토리였다.

물론 이 상소 역시 역사 속의 이야기지만,바로 내가 가까이 아는 분의 조상님께서 쓰셨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미그것은 나와 관계 없는 먼 역사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갑자기 내가 속해 있는 가까운 역사 속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자손대대로 후손들에게 선조들께서 이렇게 용기있는 상소를 감히(?) 임금님께 올렸었으며 그것은 내 자신의 부귀양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하는 일로 나라의 임금이신 분이 올바른 행동으로 정의롭게 국사를 처리하심으로써 나라의 길을 바로 잡는다는 국의가 담겨있었으니 후손들에게 그런 조상들의 목숨을 불사하는 용기 내신 행동을 엿보게 함으로서 기상을 높이고 항상 고귀한 뜻을 높이 세우고 삶을 살아야 함의 표본을 보여주시려는 모습에서 고개가 숙여졌다.

나는 전통을 잘 모른다. 내가 어릴 적 외국에 일찍 나와 살았던 것을 굳이 함당한 이유라며 내세울 수도 있었지만, 내가 한국에 살았어도 그리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을게다. 왜려 외국에 사는 지금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자부심을 느끼며 조금이라도 함께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이 돈만 아는 장사치들은 아니며, 문화와 역사를 지닌 훌륭한 민족임을 나름 보여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을 기회로 우리의 역사를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도 내게는 기쁜 수확이었다.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를 읽으며 얼마나 가슴에 뜨거운 것이 꿈틀거렸고 얼마나 내가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웠나. 그때도 나는 한국 역사를 좀 더 알고 싶다고 한국 역사책을 꽤도 많이 사놓았다. 그러고 또 이런저런 일상 속에 그 마음은 옅어지고 이제 또 다시 그 다짐을 끄집어내본다. 훌륭한 우리 선조들의 노력이 헛되이 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 고귀한 마음으로 늘 깨어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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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를 하는 내내 이 음악을 들었다.

사실 좀 더 밝은 음악을 올리고 싶었으나..

왠지 스티브 레이만의 아름다운 음악의 분위기가..

어머님의 분위기와 닮은 분위기..

이미 알랭 드 보통의 리뷰에 붙였던 음악이지만..

다시 올린다..

 

 


-Steve Raiman - Dance With The W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