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소중한당신

<참소중한당신 6월호>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와 붕어빵 아주머니...

pumpkinn 2016. 7. 8. 11:38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와 붕어빵 아주머니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떠났던 나는 동창들을 찾아 주는 사이트가 생기면서 잊고 지내던 친구들과 연락이 되어 23년 만에 한국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한국 여행 동안 친구네에서 묵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철도 없었다. 어떻게 한 달이란 시간을 그렇게 민폐를 끼쳤는지. 친구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는 다른 친구들의 연락망이 되어 주었고, 약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강행군으로 이어지는 많은 모임과 여행의 빡빡한 일정을 함께해 주었으며, 행여라도 자기 집에 있는 동안 내가 불편할까 봐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일상 리듬이 흐트러졌음에도 불편해하는 기색 하나 없이 웃으면서 대해 주는 친구가 고마웠고 미안했다. 그리움 속에 나간 고국에서 나를 반겨 준 이들은 친구들만이 아니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들께서도 반겨 주시고 따뜻한 기억을 심어 주셨다. 혼자 떠난 덕분에 만난 짧지만 따뜻했던 두 개의 일화다.

 

하루는, 나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친구에게 미안해서 혼자 다닐 수 있다고 큰소리를 빵빵 치고는 집을 나섰다. 언어가 되는데 뭐가 걱정이겠는가. 길을 건너 버스를 탔다. 맨 뒷자리로 가서 느긋한 마음으로 앉았으나 나의 느긋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분명히 친구와 이 버스를 탔던 것 같은데, 창밖으로 비치는 풍경은 낯선 모습이었다. 승객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자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버스는 다른 버스들이 정차되어 있는 조그만 공터에 섰는데, 기사 아저씨께서 나를 돌아보시더니 하시는 말씀.

안 내리세요? 여기가 마지막 정류장이에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살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아저씨 말씀에 놀라기도 하고 마지막 정류장인지도 몰랐다는 사실에 창피해져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 아저씨가 내가 앉아 있는 자리로 오더니 물으신다.

외국에서 오셨어요?”

.”

어디서 오셨어요?”

브라질에서요.”

오랜만에 오셨나 봐요.”

. 23년 만에 친구들 만나러 왔어요.”

 

아저씨는 그제야 마지막 정류장인데도 모르고 계속 앉아 있는 아줌마가 이해가 된 듯 혹시 바쁘면 지금 나가는 버스가 있으니 그 버스를 타도 되고, 아니면 5분 후면 나갈 테니 그냥 버스에서 기다려도 돼요라며 친절히 일러 주셨다. 잠시 후 돌아온 기사 아저씨는 지금 갑니다하고 운전석에 앉으셨는데, 버스비를 드리니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물으셨다.

어디 어디 가보셨어요? ○○○○백화점 가보셨어요? 외국에서 오면 많이들 가보시던데, 제가 신호를 드리면 내리세요. 그 앞을 지나가거든요.”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다시 한 명 두 명 승객들이 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기사 아저씨께서 보내시는 신호를 놓치면 어떡하나 걱정을 하다가 잠시 딴생각에 빠졌었나 보다.

아주머니, 기사 아저씨가 뭐라고 하시는데요?”

어느 학생이 일러 주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여기서 내리면 돼요. 좋은 여행되세요하고, 저 앞 운전석에서 큰 소리로 일러 주시는 기사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허겁지겁 인사를 드리고 버스에서 내렸는데, 알고 보니 내가 내린 곳은 버스가 서는 장소가 아니었다. 버스 정류장은 한참을 더 가야 했는데, 외국에서 온 촌뜨기 아줌마를 위한 기사 아저씨의 따뜻한 배려였음이 느껴졌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감동의 장면은 이어졌다. 며칠 후, 휴가를 낸 초등학교 동창과 함께 다른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로 옮기기 전에 떡볶이와 붕어빵을 굽는 포장마차에서 잠시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연히 우리의 대화 내용은 얼마나 오랜만에 한국에 나왔는지, 친구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등등이었다. 열심히 붕어빵을 굽고 계시던 아주머니, “아니, 그렇게 오랜만에 한국에 나오셨어요? 그러면 내가 돈을 받을 수 없지. 얼마나 그리웠을까?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에요. 이것 좀 더 들어요하며 떡볶이와 붕어빵을 더 얹어 주셨다.

눈물이 날 뻔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아주머니께서, 붕어빵과 떡볶이를 종일 팔아야 얼마나 남는다고, 생전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시는지. 너무 감사하고 황망해진 나는 계산을 하려고 했지만 막무가내셨다. 사정사정해서 다른 친구에게 줄 거라고 붕어빵 한 봉지를 샀을 때 그 값만 받으셨다.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는데 마치 친정에 온 딸내미 배웅하시듯 보내시는데 울컥해지며 코가 시큰거렸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내 나라는 이렇게 따뜻하구나 싶었다.

 

벌써 한국을 다녀온 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친구들은 물론 그분들로부터 받은 감동은 여전히 내 안에 생생하게 살아 있어 떠올릴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 적이 몇 번이나 될까. 따스한 배려 하나, 작은 나눔 하나가 얼마나 깊은 감동과 진한 여운을 안겨 주는지. 거창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환한 미소를 안겨 줄 수 있는 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일었다. 살짝 욕심을 부려보자면, 그분들께서 이 글을 보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어르신들로 인해 따뜻한 추억이 함께하는 포근하고 특별한 한국 여행이 되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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