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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리뷰 144] 코리 텐 붐의 ‘주는 나의 피난처’를 읽고 / 오현미 옮김

pumpkinn 2017. 10. 27. 04:19




코리 텐 붐의 주는 나의 피난처를 읽고..

 


코리 텐 붐의 주는 나의 피난처를 드디어 읽었다. 남편이 벌써부터 꼭 읽어보라고 권유했던 책이다. 먼저 읽고 그 안에서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을 만난 남편이 자주 언급했던 코리 텐 붐과 그녀의 가족 이야기. 책은 언제나 그렇듯이 내게 필요할 때 스스로 손을 먼저 내민다. 코리 텐 붐의 주는 나의 피난처는 그렇게 읽게 된 책이었다.


코리 텐 붐과 그의 가족, 카스페 텐 붐 (아버지), 코르 텐 붐 (엄마), 그리고 오빠 빌렘와 두 언니 놀리와 벳시가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따랐는지 마치 옆집 가족 이야기를 하듯 그렇게 덤덤하게 이어나간다.


전체 스토리는 간단하다. 네덜란드에서 시계 수리공으로 일하는 아버지는 진정 독실한 크리스쳔이다. 가난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고 특별히 드러남이 없는 평범한 가족이다. 하나 독특한 의식이 있다면, 저녁 8시면 모두가 모여 앉아 성경을 읽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감한다는 것. 그렇게 가난하지만 삶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며 그 뜻에 따르고자 하는 이 가족은 그냥 가만 있으면 닥치지 않을 불행을 자초한다. 그것은 바로 유태인을 돕는 일이었다. 물론 불행이란 우리 관점에서의 이야기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사랑을 행하는 행위였기에 외면한다는 것은 상상 속에서도 그려보지 않는다.  당연히 그들이 해야만 하는 사명 내지 소명일 뿐.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그 많은 가족들 중에 그 누구 한 명도 달리 생각하는 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둘 만 있어도 서로 다른 의견을 갖게 되는게 우리 일상이 아닌가. 하지만, 그들의 목숨에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그 누가 하나 그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고, 모두 유태인들을 숨기고 도와주며 결국 사랑하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누이를 잃게 됨에도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들이 매우 용감하고 혁명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도 아니라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그저 어떤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살피고자 했고, 하느님이 함께하며 그들을 보호하고 계신다는 확신 속에서 그 힘든 수용소 생활을 모두 감당해낸다. 어떻게 그런 확신을 그렇게 한 번의 의심 없이 가질 수 있을까. 하느님은 그런 자매들의 흔들리지 않는 신실한 믿음에 응답하시며, 당신만의 방법으로 그들을 보호하여 주시며, 당신의 말씀인 성경책이 수용소에서 읽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이 책을 읽으며 내게 들었던 부러움은 바로 성경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였다. 신부님의 강론과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들었던 성경책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시는 연애편지라는 말씀이 그들을 통해 알 것 같았다. 성경 한 줄을 읽기 위해 목숨을 건 위험 행위를 하는 그들. 여러 사람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성경책을 여러 권으로 찢어 나누고, 들키지 않도록 몸 속에 숨겨놓는 그녀들. 그들에게 성경 말씀은 하루를 견딜 수 있는 위로였고, 희망이었고, 사랑하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견뎌낼 수 있게 하는 기둥이었다.


성경

우리 집엔 온갖 종류의 성경책이 마치 패션쇼 런어웨이를 하듯 내 책장에 꽂혀있다. 코리 텐 붐과 언니 벳시가 그렇게 목숨으로 지켜낸 성경책이 우리 집엔 색색깔로 꽂혀있다. 부끄럽고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나도 그들처럼 성경책을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바쳐 사랑하고 읽고 그렇게 삶 속에 임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저 바램으로 끝날 뿐.


암튼, 나의 죽어버린 신앙에 불을 지펴보고자, 남편의 권유로 읽은 이 책은 나에게 불씨 하나 던져 놓았다. 감사한 일이다. 사실 내 자신이 두렵게 느껴지는 것은,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종교신앙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나의 신앙은 너무나도 건조해졌고 메마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가장 답답하게 하는 것은 신앙이란 이름으로 종교라는 이름으로 선을 긋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하느님을 두고서도 내 하느님이니 네 하느님이니 싸운다. 불상을 깨부스며 내가 믿는 신만이 바른 신이라고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언젠가 찬양곡을 찾다가 이건 교회 노래잖아하며 다른 곡을 찾던 분을 보며 가슴이 턱 막혔다. 왜 그렇게 선을 긋는 걸까.


코리 텐 붐의 가족 이야기를 읽으면서 감동도 감동이지만, 따뜻한 감사가 일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편협된 신앙을 초월한, 바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존경하고 또 사랑하는 바로 마더 데레사의 사랑.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 어떤 종교든 포옹하고 포용해주는 탈종교적인 사랑, 코리 텐 붐의 가족이 행한 하느님의 사랑. 내가 아는 하느님은 그런 분이시다.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만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시다. 이슬람이라고 내치시고, 힌두교라고 내치시고 그 밖에 내가 알지 못하는 종교라고 내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그래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선을 긋는 이들에게 혐오감을 느낀다. 구역질이 난다. 같은 성당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이 같은 일이 일어나는지. 이렇게 깨끗한 척 넓은 신앙관을 가진척 하는 나 역시 그 냄새나는 신앙인들 중의 하나이다. 어쩌면 그래서 내 자신이 투사되는 그들이 더 싫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은 나에게 아주 많은 질문을 던져주며 불편하게 했다.

과연 나는 그들처럼 나를 비롯하여 내 가족이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나와 상관 없는 이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이것은 아주 두려운 질문이다.

여러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 맞다고 말할 수 있는걸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그들을 위해 나의 생명을 바칠 수 있을까


전쟁도 아닌데 무슨 목숨 바칠 상상을 하는가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죽는 것만이 목숨을 잃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상 속에서 수 많은 선택을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잃어버리곤 한다. 어쩌면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하느님과 조금씩 멀어지는 것. 그것은 곧 죽음이다. 그렇게 매 일상 속에서 죽어가는 우리들인 것이다. 내 신앙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게 한 코리 텐 붐. 그녀의 신앙을 닮고 싶다. 그녀가 지펴준 불씨 하나, 꺼지지 않고 잘 피워낼 수 있기를 불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기도 드린다.






마치며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고 난 후, 나를 괴롭혔던 것은 책 제목이 보여주는 것 처럼 바로 하느님의 침묵이었다. 그 깊은 뜻을 알 수 없었다. 내겐 수 많은 물음표가 따라 붙었다. 너무 당연해서 한 번도 의식하지 않았던 숨 쉬기가 어느 날 갑자기 의식되어졌을 때의 불편함, 바로 그랬다. 한 번도 하느님의 침묵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던 내가 침묵을 읽음으로 하느님의 침묵을 의식하게 되었던 순간. 답답했다.

왜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순진한 일본 농부들에게 하느님 이야기를 전해서 그들을 견디지 못할 고통 속에 죽음으로 몰아넣는건지. 과연 그게 사랑인지. 장군이 신부에게 하던 그 말에 어떤 반론이 있을 수 있을까. 침묵은 너무나도 깊고 무거워서 신음 소리도 낼 수 없는 하느님의 무서운 침묵. 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겐 의문이고 잊어버릴만 하면 수면 위로 올라와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런데, 코리 텐 붐이 그 침묵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다.


세상엔….. 너무 엄청나서네가 감당할 수 없는 지식도 있단다. 네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아버지께서 알려 주실 거야…” 코리가 어렸을 때, 아빠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아빠의 대답이었다. 그렇다 내가 6살의 코리처럼 신앙이 어리기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일 뿐이었다. 하느님이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너무 엄청나서 내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침묵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 때가 되면 하느님의 응답으로 느껴졌을 그것이. 내가 단순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로 하느님께서 침묵하신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내게 답을 주신 하느님, 코리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내 신앙이 바닥을 기고 있기는 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도 알고 계실 것이다. 내 삶 속에서 하느님을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밤이 되자 어린 시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상하게 자꾸 생각났다. 그것도 아주 생생하게, 이제 나는 안다. 그런 기억들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여는 열쇠라는 것을. 우리 인생의 경험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들어 쓰시면 장차 주께서 우리에게 맡기실 일에 대한 완벽하고도 신비로운 주니 작업이 된다는 것 또한 이제는 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단조롭고 뻔한 일상 속에도 미리 준비할 새로운 미래가 있다는 것 또한 그때는 몰랐다.” (P41)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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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ka Sulic - Them from Schindler'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