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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리뷰 135]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를 읽고 / 조동섭 옮김

pumpkinn 2015. 10. 30. 07:24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를 읽고...

 

중간고사가 끝나고 미친 듯이 달리느라 지쳤던 심신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고자 책을 집어 들었다. 나중에 기억하고자 줄치고 노트하고 여러 번 읽고 할 필요 없는, 그저 읽히는 대로 편하게 읽어내려 갈 수 있는 소설을 택했다. “빅 픽쳐”. 하도 인터넷에서 난리 부르쓰라 오래 전에 사 놓았는데 책장에 얌전히 앉아있다 이제야 간택 된 책이었다.

빅 픽처는 꿈과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괴리와 갈등 속에 우리는 얼마나 고통을 겪으며,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벤 브래드포드라는 주인공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벤은 사진작가로서의 꿈을 갖고 있지만, 현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부유한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난 벤은 아버지의 반대에 저항하며 사진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반항도 해보고 몸부림도 쳐보지만, 몸으로 익숙해진 것을 떨쳐내기 힘들다. 결국 그는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풍요로운 생활로 돌아가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라 생각하며 아버지의 뒤를 따라 월스트릿의 변호사 길을 걷는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꿈을 이루기 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합당한 변명으로 선택했던 길은 곧 나의 현실이 되고 일상이 되어 조금씩 꿈으로부터 멀어져 가게 하고 그 틈에서 우리는 방황하고 갈등하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한 것은, 그렇게 혐오하고 벗어나고 싶었던 현실을 잃게 되는 그 순간에 우리는 그 현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게 되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모든걸 잃어버리는 바로 그 찰라적인 순간에. 빅 픽처는 슬프게도 그러한 인간의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꿈과 현실 속에서 방황하며 고통 받는 것은 아내 베스도 마찬가지다. 작가로서의 재능이 있긴 하지만, 작가로서 인정을 받지는 못하고 자신이 그토록 겁내던 엄마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역시 사진작가를 꿈꾸는 허풍쟁이 게리와 외도를 하게 된다. 자신이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을 남편의 탓으로 돌리며 남편이 혐오하는 스타일의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결국 벤을 극한적인 상황으로까지 몰고 가는 별로 현명하지 못한 그녀..

베스의 외도 대상인 게리 소머스의 성품도 흥미롭다. 부유한 벤과는 달리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겨준 신탁으로 생활을 영위하지만, 그는 자신의 꿈인 사진 작가로서의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사진을 찍어 여러 잡지사에 보내지만 늘 퇴짜의 연속. 하지만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비굴해보일 정도로 집요하게 잡지사에 사진을 보내고 편지를 보내며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유명한 사진작가들이 마치 자기와 가까운 지인이라도 되는 듯 늘 허풍을 떤다. 벤의 표현대로 스스로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우발적인 상황이긴 했지만, 벤에게 죽임을 당한다. 

읽으면서 놀랜 것은 소설의 흐름이나 구성이라기 보다는 작가가 가진 사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때문이었다. 혹시 그는 글 쓰는 작가가 아닌, 사진 찍는 작가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 어쨌든, 책은 첨엔 흥미롭게 읽혀졌는데 읽으면서 페이지가 넘어가면 갈수록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책이 시시하거나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게리가 된 벤이 느끼는 그 불안감과 두려움이 내게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결론이 뻔할 것 같은데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벤 브래드포드에겐 새로운 삶이 주어졌다. 그 과정이 끔찍하긴 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들 중에 자신이 원했던 길을 가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좀 더 젊었을 때는 내가 원하는 그 꿈을 꼭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고 싶은 그 그림의 삶을 살게 된다고 해도 나는 과연 행복하다고 만족하게 될까?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혹시 이게 아니었는데라고 막연한 슬픔에 잠기며 공허감을 맛보게 될 수도 있지 않나. 또는, 현실과 타협하다 보니 꿈꾸던 꿈과는 거리가 먼 다른 삶을 살게 되었지만, 그 삶 속에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현실에 적응하다보니 얼떨결에 이 삶으로 흘러들어 왔는데, 이 삶이 좋더라고 말이다.

물론 상상 속에 그려보며 허공으로 뿌려지는 가능성만 가득한 공허한 대답보다는, “살아보니 좋았더라:, “살아보니 아니더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멋지고 매력적일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 모든 삶을 다 살아봐야만 대답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모든 사람과 다 사랑을 해볼 수 는 없는 것처럼, 삶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위해 모든 삶을 다 사랑 볼 수는 없다.

꿈이 이루어 좋을 수도 있고, 꿈을 이루고 나서 공허함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꿈이 꿈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연금술사에 나오는 크리스탈 가게 주인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그 이란 것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북극성인 것. 삶이란 아니러니 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꿈을 이루고 못 이루고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내게 주어진 삶 속에 의미를 발견하며 그 안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아주 식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꿈이란 것도 그것을 삶 속에 누리며 살다 보면 그 역시 현실이 되고 일상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또 다시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고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꿈을 꾸게 될지도 모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찰라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자 우리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 너무 염세적인 결론인가? 암튼,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꿈을 이루고자 열심히 뛰어가는 그 과정이 행복하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점점 나도 크리스탈 가게 주인처럼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꿈을 현실로 끌어내려오기 보다는 그냥 꿈으로 있어주길 바라는..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높디 높은 곳에 떠서 내 갈 길을 밝혀주며, 내가 바라보며 좋아라 하며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으로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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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g Bang - Tell me Goodbye